[기자수첩]'트릴리온 센서' 시대 한국의 자리가 없다

센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모든 사물이 데이터를 만들고 다른 사물과 연결돼 가치를 키우는 사물인터넷(IoT) 구현에 오감 역할을 하는 센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2025년이 되면 센서 1조개가 지구촌에서 작동하는 '트릴리온 센서'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센서 시장은 승자 독식 구조다. 원천 기술과 양산 경쟁력을 확보한 선발 업체가 시장을 선점한다. 물량이 많아질수록 가격은 크게 낮출 수 있다. 이후 또 다른 센서 전문 업체를 인수합병(M&A)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시장을 싹쓸이한다.

글로벌 센서 업계는 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업계는 아직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심점이 되는 협회 조직도 없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대다. 업계 규모는 2013년 최대치를 찍은 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센서 사업을 포기하거나 해외 업체에 인수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 한 굴지 전자 기업은 한 해 5억개 안팎 센서를 구입하지만 대부분 외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 기반이 미약하기 때문에 M&A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도 없다. 그나마 규모가 있는 곳은 소자를 가져다 조립하는 모듈 업체로, 소자 설계나 생산 기반은 부실하다.

원천 기술 확보에 몇 년이고 수백억원대 연구개발(R&D)비를 부어넣을 수 있는 회사도 별로 없다. 국가 지원도 별 효과가 없었다. 업계 관계자 말을 빌리면 자율주행차 필수 기술 가운데 하나인 레이더 센서에 투입된 국책 과제와 기업 투자비를 합치면 1000억원은 훌쩍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상용화가 이뤄진 것은 1~2개 제품에 불과하다. 원천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양산과 상용화는 또 다른 차원 문제라는 얘기다.

1등이 될 만한 기술에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지원도 학술이나 연구 단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양산 단계 경쟁력을 갖추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가능성이 있다면 글로벌 마케팅 능력 및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과 손잡을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센서 혁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