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더 짙어진 그림자규제...금융사 옥죄기에 '산업혁신'은 저멀리

[이슈분석]더 짙어진 그림자규제...금융사 옥죄기에 '산업혁신'은 저멀리

금융권에 그림자 규제가 재등장했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이 그림자 규제 철폐를 선언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금융권 전역에 각종 규제가 다시 움텄다.

그림자규제는 명시적인 규정 없이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나 창구지도 등을 통해 이뤄진다. 영업행위 대부분이 감독당국의 관리·감독 대상인 만큼 금융사는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금감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무자의 말 한마디가 금융권에게는 압박이다.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후 이런 현상은 본격화하고 있다. 그림자규제 부활에 금융권은 금융혁신과 소비자 보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삼성·한화생명, 일괄지급 거부…과도한 규제 '한 목소리'

삼성생명을 필두로 불거진 생명보험업계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 사태가 대표적이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 번에 납입하고, 바로 다음 달부터 즉시 연금을 받는 상품이다.

지난 3월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1건의 민원에 대해서 동일하게 처리하라는 방침을 생보사들에 통보, 사실상 일괄구제를 선언했다.

일부 생보사는 약관상 문제를 인정해 수정하고, 접수된 민원에 대해서 미지급액을 환급하는 등 조치에 나섰지만, 1건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일괄 구제하는 잣대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었다.

통상 즉시연금은 1억원을 한꺼번에 내면 보험사는 일단 600만원을 사업비 등으로 뗀다. 이후 나머지 9400만원을 굴려 생기는 수익을 연금으로 주다가 만기가 되면 1억원을 다시 돌려준다. 보험사는 사업비 등으로 뗀 600만원을 만기까지 채워 넣기 위해 운용 수익을 모두 연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매월 일부를 떼어뒀다. 그런데 시장 금리가 계속 내리면서 매달 지급하는 연금액이 크게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가입자 불만이 커진 것이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지급 관련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 개별 사안에 대해선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생명은 “일괄구제는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법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도 자체 법률검토를 거친 결과 일괄구제 관련 '불수용 의견서'를 9일 오후 금감원에 제출했다.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액 규모는 약 850억원으로 추정된다. 삼성생명보다는 적지만, 미지급액 규모로는 업계2위에 해당한다.

한화생명은 즉시연금 상품인 '바로연금보험'의 민원인에게 납입원금 환급을 위해 떼는 사업비까지 돌려주라는 금감원 분조위 결정에 대해 “납입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공제한다는 보험의 기본원리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분쟁조정결정 1건에 국한되며, 추후 법리적 논쟁이 해소되는 즉시, 동종 유형의 계약자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기 든 생보사, 과거 자살보험금 사태 재발 우려 가능성도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까지 금감원의 즉시연금 일괄구제를 거절하면서 업게는 과거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양상이 전개될지 주시하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2016년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생보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했다. 금감원은 당시 주계약서 또는 특약을 통해 피보험자가 자살할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해당 내용이 약관상 실수라면서 자살은 재해가 아닌 만큼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다. 관련 약관 내용도 수정했다.

이 사안은 대법원까지 가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인 2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금감원은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생보사들에 보험금 전액 지급을 요구했다. 이에 생보사들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지만, 금감원은 미지급한 보험사 4곳에 중징계를 내렸다. 대형사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에 최대 3개월의 영업정지 조치가 나오자 생보사들이 결국 전액을 지급했었다.

업계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따라 자본확충이 시급한 시기에 즉시연금 사태가 터지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중소형사는 즉시연금 일괄구제 시행으로 많게는 한 해 순이익을 고스란히 토해낼 가능성도 있다.

세계적으로 인슈어테크를 이용한 상품·서비스가 확대되고, 국내 역시 독립법인대리점(GA), 핀테크 업체들이 IT기술을 기반으로 역량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정부의 불확실한 기조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IT기술을 활용한 기술 및 서비스가 확대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며 “그림자규제란 불활실성은 산업전반의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