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공정보화 사업관리, 후진국 방식 벗어나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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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구글 본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개발자를 만났다. 일하는 방식이 인상에 남았다. 프로젝트 팀원 모두가 서로 연락처를 몰랐다. 굳이 연락처를 알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오늘 만나면 다음 미팅 날짜와 장소만 정한다. 다음 약속 때까지 각자 해야 할 역할 분담만 명확히 한다. 다음 미팅 때 자신이 맡은 내용만 철저히 완성하면 된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팀에서 제외된다. 연락처를 알 필요도 없고 출퇴근 여부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결과물만 정확하면 되기 때문이다.

구글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소프트웨어(SW) 기업이 일하는 방식이다. SW 개발은 창의력, 코딩 실력 등 개인 역량이 중요하다. 새로운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만드는 창의 직업이다.

인공지능(AI) 플랫폼 텐서플로와 세계적 서비스가 탄생한 것은 구글이 개발자가 능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이 출퇴근부터 개발자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감독했다면 세계적 개발자가 모이는 직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이 SW라고 강조한다. 여전히 산업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이 많다. 정부부처, 공공기관 등이 대표 조직이다. 공공정보화가 시작된 지 5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관리·감독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업계 지적에 공감해 공공기관이 정보화사업 투입 인력을 관리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 관리·감독이 버젓이 이뤄진다. 사업 제안요청서(RFP)에 '출퇴근 등 근무 상태에 대해 발주 기관으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등 기업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갑질'을 자행한다.

공무원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관리·감독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조직 투명성 확보와 운영 효율을 위해 관리·감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SW 산업은 투입 인력 관리가 아니라 결과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SW는 개발자 10명이 한 달 걸려 하는 작업을 핵심 개발자 한 명이 보름 만에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투입 인력과 관리 등은 사업을 수주한 SW 기업 역할이다.

원격지 개발도 마찬가지다. 눈앞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원격지 개발 도입을 꺼리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세계 1위 국가다. 공공정보화 시스템과 서비스 덕분이다. 전자정부 1등 공무원답게 공공정보화 사업 관리 인식도 바꿔야 한다. 전자정부 1위 타이틀을 자신 있게 얘기하려면 후진국 수준 관리·감독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