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스라엘 vs 대한민국

[데스크라인]이스라엘 vs 대한민국

이스라엘은 작은 거인이다. 국토가 우리나라 5분의 1밖에 안 된다. 인구도 서울보다 적은 840만명이다. 이 작은 나라가 미국 나스닥을 휘어잡고 있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상장 기업을 배출했다. 83개사나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각각 2개사에 불과하다.

힘의 원천은 스타트업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업은 5200여개사다. 여기에서 매년 700여개사가 탄생한다. 인구 대비 벤처 창업 비율이 세계 1위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눈독을 들이면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2013년 이스라엘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앱) 스타트업 '웨이즈'은 1조원에 구글에 팔렸다.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강국이 된 이유는 역설이게도 높은 실업률 때문이다. 이스라엘 재건을 위해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높은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았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게 창업 활성화였다. 이스라엘 모태펀드 '요즈마펀드'도 그렇게 탄생했다. 요즈마펀드는 정부가 40%, 민간이 60%를 각각 투자한다. 1993년 1억달러로 시작해 40억달러로 40배나 불어났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과 선순환 펀딩 시스템이 작지만 강한 창업 국가를 낳았다.

한때 작은 거인으로 불린 대한민국 현실은 어떤가. 최악 고용 상황과 같은 수치를 언급하는 것이 이제 식상할 정도다. 몇 가지 사례만 봐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지난달 7급 공무원 공채에 3만6662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47.6대 1이었다. 서울 노량진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굳은 표정으로 쪽방과 학원을 전전한다. 서울 신도림역 반경 100m 안엔 치킨집이 790여개에 이른다. 창업이 늘었다지만 십중팔구 생계형 창업이다. 밥풀 하나에 개미 수백 마리가 몰려드는 제로섬 게임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제2의 닷컴 열풍으로 비유되는 블록체인 혁명에선 한국은 '갈라파고스'나 다름없다. 암호화폐공개(ICO)가 금지되면서 블록체인 기업은 너도나도 해외로 빠져나갔다. 30조원에 이르는 암호화폐 거래 자금도 해외 거래소로 유출됐다. 기업과 자본이 '규제 강국'을 등지고 있다.

이스라엘 vs 대한민국. 스타트업 권하는 사회와 공무원 권하는 사회. 두 국가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한국 역시 과거 이스라엘처럼 높은 실업률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정책 방향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스라엘이 미래를 택했다면 한국은 현재에 다 걸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자리에 연연한다. 손쉬운 공공 일자리 카드부터 들고 나왔다. 공공 일자리 정책이 스타트업 육성보다 리스크는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공공 일자리는 무한정 늘릴 수 없다. 반면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일자리를 아메바처럼 무한 증식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래를 잃은 젊은이들이다. 공무원 시험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생계형 창업으로 내몰릴 것이다. 지하철역 주변에 치킨집이 새로 생기고 또 망하는 '치킨 게임'이 불가피하다.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고, 실패하면 그것을 자산으로 다시 도전하는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와는 결이 다르다.

'혁신 성장'이라는 구호가 나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혁신 성장이 치킨집, 음식점, 편의점 등 자영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혁신 기업을 잉태할 창업 시스템과 규제 혁파가 절실하다. '작은 거인' 이스라엘을 다시 벤치마킹해 볼 것을 권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이스라엘과 지중해 연안.(게티이미지뱅크)
이스라엘과 지중해 연안.(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