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년 창간기획Ⅱ] 삶의 질을 높이는 힌트, 미래기술에서 찾는다

1990년대 후반 닷컴 열풍이 불었다. 세계가 무한한 인터넷 바다에 열광했다.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파고들면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중후반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이 같은 흐름은 더 빨라졌다.

표. 2016년 세계서 가장 많이 투자를 유치한 상위 5개 기업 현황 (자료=LG경제연구원)
표. 2016년 세계서 가장 많이 투자를 유치한 상위 5개 기업 현황 (자료=LG경제연구원)

엄청난 정보의 홍수와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단말 등장은 되레 정보 격차가 심화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젊은층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목적지까지 가는 최적 대중교통 수단을 파악하고 처음 가는 길도 쉽게 찾아간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층은 여전히 낯선 이에게 길을 물어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ICT는 발전 방향을 기술 자체 고도화가 아닌 사람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정보 격차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인구 절벽 등 사회 문제와 갈등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미래 기술로 해결해야 할 필요도 커졌다.

무엇보다 미래 기술은 남녀노소 개인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병원에 직접 방문하기 힘든 환자 상태를 피부에 부착된 칩이나 입고 있는 옷에서 실시간 파악해 담당 의사에게 전송하는 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 신체 제약이 있는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이나 장애 학생의 등·하교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돕는 서비스 로봇 등 사회 약자를 위한 기술도 필요하다.

◇이미 시작한 변화

스마트폰은 새로운 미래 시장을 이끌어낼 '스마트 허브 단말'로 평가받는다. 스마트 스피커와 함께 음성을 인식해 집안 기기를 제어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여러 첨단 기술 서비스를 한 군데서 이용할 수 있는 허브 중 하나로 꼽힌다.

스마트폰은 장애인 생활을 한층 편리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통신 기술과 기기 발달로 등장한 영상통화 기술은 청각장애인이 텍스트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영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일상을 한층 편리하고 스마트하게 바꿔 놓을 기술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당장 세계인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기술은 자율주행차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거나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도로 상황을 인지해 차량을 제어하는 완전 자율주행(레벨5)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이 별도 운전 능력을 학습하지 않아도 되므로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 약자에게 더 유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체 제약 때문에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이 이동 자유를 더 누릴 수 있는 사회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 스마트 도로 인프라가 보급되고 도로 위에 자율주행차만 다니는 시대가 열리면 교통사고 확률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래 기술은 의료 서비스 격차를 줄이는 열쇠도 될 수 있다. 신체 활동 정보를 수집하는 칩을 몸에 이식하거나 부착하면 병원선에 의존해야 하는 섬 지역이나 산간벽지 거주자가 멀리 떨어진 병원을 방문하지 않아도 실시간 진료를 할 수 있다. 피부에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면서 인체에 해가 없는 초소형 반도체, 알약처럼 먹어서 내시경을 빠르고 간편하게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 알약 등은 이미 연구 중인 기술이다. 진료비 부담을 낮추고 상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 서비스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신체에 이식하거나 먹을 수 있는 반도체, 피부에 부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려면 인체에 해가 없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안정적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딱딱한 금속 재질이 아닌 사방으로 늘었다 줄어드는 탄성이 필요하고 땀, 고온, 충격에 잘 견디는 내구성도 요구된다. 현재 상용화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인 만큼 소재, 설계, 공정 등 전 과정에 걸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5G 통신도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공헌할 핵심 미래기술로 꼽힌다. 5G는 현 LTE 최대 속도보다 약 20배 빠르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으므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전송할 수 있다. 원활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과 함께 초고속 5G 통신이 필수로 갖춰져야 한다.

5G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각종 센서를 활용해 안전관리를 할 수 있다. 고화질 영상을 전송할 수 있어 다양한 원격 진료도 가능해진다. 스마트 도로 인프라와 자율주행차가 실시간 통신하면서 돌발 상황을 빠르게 감지·분석해 대처하려면 5G 통신이 필수다.

◇인류 공통 숙제 풀어나가는 실마리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농촌 인구는 감소하면서 농업 산업 인구가 줄고 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이 기존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농업은 큰 진보 없이 과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도심과 농촌 간 소득격차를 낳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농업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우선 농촌 생산성을 혁신하기 위해 드론, 사물인터넷(IoT), AI, 클라우드 등을 이용하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센서를 이용해 토양 상태와 작물 재배 현황을 실시간 알려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드론을 이용해 농약을 살포하는 것은 물론 고해상도로 촬영해 작물 재배 상태를 체크하는 등 농가가 좀 더 편하고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기술도 시도되고 있다. 드론이나 센서를 이용해 가축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계속 축적·분석하면 농가에서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농작물에 더 많은 영양소를 함유하거나 더 건강하게 성장해 수확량을 증대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농작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성장에 이로운 곤충이나 미생물을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대체 식품 기술 개발 분야도 새롭게 떠오르는 미래 산업으로 꼽힌다.

대표 사례가 연구실에서 친환경 식품을 개발하는 햄튼크릭 푸드(Hampton Creek Foods)라는 스타트업이다. 식물 기반 대체 계란을 개발하는데 더 저렴하고 더 건강한 대체 식품 개발이 목표다.

빌 게이츠와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진짜 계란으로 만든 머핀과 이 회사의 계란 대체품으로 만든 머핀을 블라인드 테스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콩으로 만든 치킨을 개발해 판매했다. 기존 대체품과 달리 맛과 질감이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 이 외에 염도는 줄이고 미네랄 함유는 높인 소금 대체품, 당분을 줄이면서 단맛은 그대로 유지하는 저설탕 대안 식품도 등장했다.

신선한 식재료나 식품을 소비자에게 최적의 경로로 전달하기 위한 식품 전자상거래 분야도 혁신이 활발하다. 다양한 소비자 입맛을 충족하고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을 신선한 상태로 받아 건강과 맛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다.

자동차가 아닌 드론으로 배송하는 등 배송 방식을 바꾸거나 배송 중인 식품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최적의 배송 경로를 도출하는 시도도 있다. 식품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관·운송 시 별도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는 미래기술은 상용화되면 인간 삶의 질을 높이면서 동시에 세계가 공통으로 겪는 환경, 건강, 복지 등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다만 높은 비용으로 인해 소위 '가지지 못한 자'가 첨단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된다. 양질의 서비스를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함으로써 취약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돼야 한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