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 전자신분증 도입, 지금 바로 검토해야

20년 전만 해도 주민등록증은 종이였다. 증명사진을 어렵지 않게 바꿔치기 할 수 있어 위조 주민등록증이 사회 문제화 됐다.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민등록증 재질을 플라스틱으로 바꿨다. 물에 젖는 현상은 없어졌지만 첨단 위·변조 기술은 따라 발전, 타인 신분증 위·변조 악용 사례는 여전히 계속됐다.

전자신문이 생체 인증 전문 기업 리얼아이텐티티 산하 생체인증연구소와 공동으로 스마트폰과 진흙을 활용해 진행한 복제 실험은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관리 문제점을 보여 주는 결정판이었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된 지문, 스마트폰, 진흙 한 덩이만 있으면 관공서 무인발급기와 지하철 내 민원발급기 3000개 이상이 뚫리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사람 실제 지문을 3D프린터 등을 이용해 복제한 사례는 있었지만 주민등록증 지문이 활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민등록증을 분실하면 지문과 주민등록번호가 한꺼번에 유출된다. 최근 5년 동안 분실된 주민등록증이 926만건에 이른다. 이들 분실 주민등록증은 모두 잠재 범죄 도구가 되는 것이다.

보안범죄는 '창과 방패' 싸움에서 방패가 뚫렸을 때 발생한다. 지금의 플라스틱 신분증 형태로는 지문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집적회로(IC)카드 형태 국가전자신분증 체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국가전자신분증 도입을 준비했지만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시민단체와 정당 반대로 무산된 상태다. 그 사이 많은 국가에서 전자신분증 체계를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전자신분증도 공격에 취약한 부분이 발견될 수 있지만 실제 지문을 신분증에 복사해서 노출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국가전자신분증 기술을 그대로 도입할 이유는 없다. 우린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첨단 기술 강국이다. 우리 기술로 어떤 형태든 분실 가능성을 줄이고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국가 통용 신분증을 기획할 수 있다. 널려 있는 기술로 쉽게 해킹되는 현행 신분증 체계는 조속히 바꿔야 한다. 단 몇 분 만에 무장 해제되는 보안 취약점이 확인된 지금이 바로 검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