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펀치]<88>'선한 갑'이 당연한 사회

[정태명의 사이버펀치]<88>'선한 갑'이 당연한 사회

“감사합니다.” 편의점에서 계산하며 공손히 인사하는 중절모 중년은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의 대표였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화답하는 청년의 목소리도 밝다. 당연한 대화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업 대표가 갑질의 대명사로 치부되는 현실이 슬프다.

연일 터져 나오는 기업 대표와 상사의 '갑질 논쟁'으로 나라 전체가 우울하다. 부하 직원을 욕하고 때리고 상처 주는 갑질이 연일 폭로된다. 사소한 일로 식당 직원에게 호통치고, 비열한 언사로 직원 인격을 모독하는가 하면 폭력으로 몸과 마음을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운동선수 대상 폭력과 갑질은 당연시할 정도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누구나 한두 번의 갑질은 자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더욱 우울감에 빠뜨린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88>'선한 갑'이 당연한 사회

희망은 세상이 갑질투성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눈을 돌리면 여기저기 선한 갑이 눈에 띈다. 직원 가족의 일상사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중소기업 사장, 명절 때마다 부하 직원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쓰는 상사, 몸이 불편한 후배 직원 출퇴근을 돕는 선배는 모두 선한 갑이다. 이제라도 선한 갑이 당연하고, 갑질은 단어조차 사라진 미래를 위해 개인을 시작으로 사회 모두가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한 갑이 되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는 '이배존 운동'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존중하려는 갑의 관심과 노력이다.

이해는 부하 직원의 생각, 능력, 환경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물론 일정 목표와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조직 특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가 조직 능력 극대화를 설계하는 바탕이라는 또 다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폭발하는 자신을 억누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직원 능력과 특징이 드러나고, 조직의 '스스로 참여'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지나친 이해가 무능력한 직원에게 변명의 명분을 준다는 우려는 버려도 된다. 득이 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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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에서 시작되는 배려는 감동이다. 배려받기 원하는 인간 본능 때문이다. 특히 상사로부터 관심과 배려는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이다. 가끔은 쾌적한 사무실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고, 출출한 오후에 과자 한 움큼을 내어놓는 단순한 행동이 배려다. 결근한 직원을 걱정하는 문안 전화, 야근으로 지친 직원에게 문자 한 통으로 응원하는 상사는 조직의 등불이다. 어색하지만 배려의 실천은 단순한 실적 상승뿐만 아니라 출근의 즐거움까지 제공할 것이다.

이해와 배려의 바탕은 상호 존중이다. 상사와 부하 직원의 가장 큰 차이는 '나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저 태어나서 먼저 취업하고 더 많이 경험한 것을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다. 인격의 우열을 결정하는 인자는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부하 직원의 인격을 침범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한다. 인격 모독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비대면 관계가 주를 이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상호 존중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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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존은 갑의 전유물이 아니다. 상대의 맞장구가 없으면 시들기 마련이다. 부하 직원도 상사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상호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을과 갑이 함께 '이배존' 함으로써 기대 이상 실적과 만족이 창출됨을 경험하기 바란다. “사장이 훌륭하면 1년 번창하고, 직원 애정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10년을 보장하고, 소비자 사랑은 영원히 성장하는 기업을 만든다”고 말하던 선한 갑을 기억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