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4차 산업혁명 시대의 회계업계 준비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정보분석팀장.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정보분석팀장.

바둑에서도 컴퓨터가 사람을 이긴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있는 시점에 문득 '나는 뭘 준비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짐작에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 보니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비슷했다.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뭔가 되겠지.”

컴퓨터가 인간의 판단 능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 반 걱정 반'이지만 아직까지 기술 변화가 자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막연하게 느낌만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AI)' 또는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한 미래 변화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방법을 구체화해서 알려주는 기사나 자료는 많지 않다. 설령 있다 해도 내가 준비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설 뿐이다.

필자도 이런 두려움이 있다. 게다가 그 두려움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아들 대화 가운데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의 무서운 용기로 나타날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4차 산업혁명, AI 시대에 이를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이런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용기일 것이다.

필자는 이 용기를 끌어내기 위해 효과가 가장 크고 유일한 수단이 프로그래밍이라고 단언한다. 거창한 표현, 실행하기 어려운 대안은 사실 의미가 없다. 집에서 혼자 소설책 읽듯,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하듯 프로그래밍 세계로 발을 한 번만 담그기를 권한다.

필자가 회계사다 보니 회계 관련 당사자가 먼저 프로그래밍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가 있는데 굳이 어려운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엑셀은 매우 훌륭한 소프트웨어(SW)다. 그러나 엑셀 진가는 프로그래밍 언어 VBA를 통해 발휘된다. 생각해 보라. 몇 십만 건의 데이터를 엑셀 함수 활용과 함께 수작업으로 처리하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하면 엑셀 효용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엑셀의 추가 공식 프로그래밍 언어로 VBA보다 훨씬 배우기 쉬운 오픈소스 파이선 채택과 관련,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엑셀이 파이선을 추가 언어로 채택하게 되면 엑셀에서 파이선을 이용해 AI(기계학습, 딥러닝 등)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계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 수 있다.

필자는 데이터 분석용으로 각광 받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 지났다. 배우고 익히기를 2년 동안 했다는 말은 아니다. 처음 배울 때 나와 프로그래밍은 궁합이 안 맞는 것은 아닌가, 내 머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조금씩 참고 연습하면서 회계감사에 이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고 회계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알(R)과 파이선을 활용한 회계프로그래밍'이라는 책을 집필했고, 공인회계사 회원에게 가르치고 있다.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이라는 표현은 거창하게 보이지만 사실 별것 없다. 1+2를 계산기에 두드리듯 a=1, b=2, a+b를 화면에 치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타'라는 정보기술(IT) 개발자의 명언이 있다. 한 줄 코딩을 직접 쳐 보는(일타) 순간 사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은 천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을 읽으려면 천재여야만 하는가. 목표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건 세상을 바꾸는 것이건 상관없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은 여러분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제공할 것이다.

오늘 따라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다시 떠오른다. “이 나라 모든 사람이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정보분석팀장 tasikim@kicp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