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광주형 일자리 운명은

광주시가 추진해 온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가 제시한 단체협약 유예조항 수정안을 현대자동차가 거부하면서 2주가 넘도록 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협상 당사자 모두에게 책임론이 쏟아지고 있다. 광주시는 현대차와 노동계 사이에서 이중플레이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비판, 현대차는 고작 500억원 남짓 투자하면서 임금 동결과 단체협약 유예조항을 고집했다는 지적을 각각 받고 있다. 임금을 하향평준화하고 자동차 시장 위기를 초래한다며 '나쁜 일자리'로 바라보는 노조에 대한 시각도 싸늘하다.

이렇다 보니 노·사·민·정이 참여해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당초 취지마저 퇴색되고 있다. 뒤늦게 이용섭 광주시장이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지만 당분간 협상이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고위 임원 인사까지 겹친 데다 협상 타결 시 즉각 파업에 들어가겠다는 노조의 강경 입장도 여전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형 일자리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 공장 모델을 지원할 법률상 근거를 마련하는 등 내년에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전국 차원의 이슈가 된 이유는 적정임금과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꽉 막힌 노사관계에 새로운 모델이 되고, '고비용 저생산' 늪에 빠진 제조업의 회생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광주시, 현대차, 노조의 전향 자세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3자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면밀히 사업성을 분석한 뒤 재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밀실 협상을 중단하고 조급한 성과주의도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을 사회 대타협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를 잉태하기 위한 산고로 여기고 새해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