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눈높이 맞지 않는 디지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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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위기감이 팽팽하다. 은행업, 증권업을 가리지 않고 금융권 전반에 걸쳐 영역을 넓히고 있는 카카오가 위기감을 일으키고 있는 근원이다.

은행에 비해 자본력이 약한 증권사의 위기감은 더 심각하다. 카카오뱅크에 이어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증권가도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증권사 사장마다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금융을 내세운 사실에서 증권가 위기감은 여실히 감지된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의 약진을 보면서 키움증권이 객장 없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만으로 위탁매매 시장을 석권하던 과거를 떠올린다. 2000년대 초반에 키움증권 등 온라인 전업 증권사의 등장을 계기로 뒤바뀐 증권가 지형은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다. 현재도 키움증권은 개인투자자 시장 점유율 25%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미 위탁매매 수수료를 통한 수익 창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평생 무료 수수료 혜택을 내걸고 고객을 우선 붙들어 두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로보어드바이저(RA)를 통한 자산관리 등 다양한 투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챗봇 등 야심 차게 선보인 서비스는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업계획 뒤편으로 밀려나는 일이 숱하게 벌어진다. 디지털을 내걸었지만 정작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푸념이 일선에서 이어진다.

RA, 챗봇, 비대면 계좌 개설 등 계속되는 신기술을 도입해도 고객이 전통 금융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결국 눈높이 차이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그동안 카카오뱅크와 눈높이를 맞추느라 애먹었다”면서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고객들은 왜 당일 결제가 불가능하냐고 물으면서 사흘 이후 결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주식시장 관행을 부정한다. 기존 증권사 시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시도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전문 증권사의 약진도 벤처 버블 시기 주식으로 '대박'을 꿈꾸던 개인투자자의 선택에서 출발했다. 각 증권사의 새해 구호가 헛된 울림에 그치지 않고 고객 눈높이와 맞는 디지털금융 혁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