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칼럼]갈라파고스 국회와 정부

[김상용 칼럼]갈라파고스 국회와 정부

에콰도르 서쪽 926㎞ 태평양 해상에 20여개 섬과 100여개 암초, 갈라파고스 군도다. 적도 부근 남북으로 분포한다. 육지 면적은 7880㎢로 제주도보다 네 배 넓다. 일부는 화산 활동 중이다. 500만년 전부터 외부와 차단된 이 섬 생태계는 독특하다. 거북, 펭귄, 이구아나 등 고유종(種)이 살아간다. 5개 유인도에 2만5000여명도 함께 살고 있다.<각종 자료 요약>

현대 사회에서 갈라파고스를 재조명한 사람은 일본 휴대전화 아이모드 개발자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학 교수였다. 그는 일본 기업이 만든 휴대전화가 갈라파고스 섬 고유종과 비슷하다며 기술적 고립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1980년대 이후 일본 휴대전화 기업은 최고 기술로 다양한 신제품을 만들어 냈다. 세계 시장과는 동떨어진 진화였다. 3세대 1억명에 육박하는 휴대전화 내수 시장을 만들었지만 차세대 스마트폰 생태계 앞에 무너졌다. 모바일TV, 각종 게임, 전자결제, 디지털TV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은 훌륭했지만 생태계는 폐쇄적이었다. 정부와 의회는 각종 규제로 생태계를 보호했다. 이종 생태계가 진입하자 연약한 생태계는 파괴됐다.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은 이후 첨단 기술로 만든 폐쇄적 생태계가 외부에 노출될 때 쉽게 무너지는 구조를 풀이하는 말로 인용한다.

[김상용 칼럼]갈라파고스 국회와 정부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기술에 의해서만 발생할까. 아니다. 무능한 정부, 세계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하는 지도자에 의해 주로 만들어진다.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보호하고, 자국보호주의가 판칠 때 벌어진다. 정부와 국회가 표만 의식해 생태계의 상호작용과 접변 등을 막을 때 일어난다.

갈라파고스 현상은 주변에 널려 있다. 해외 국가는 개방하고 협력하는데 우리는 막기만 한다. 막기 어려우면 결정을 미룬다. 우버, 에어비앤비, 인터넷은행, 게임 강제 셧다운제, 자율주행차, 카풀 규제 등이 그랬다. 어떤 이는 은행 관련 모든 신규 상품을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못된 규제임을 인식하지만 시민단체와 표를 의식하면 눈을 감는다.

대표적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제도는 출발부터 기형적이었다. 법 적용 대상을 국내 기업에 국한했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은 손대기 어려웠다. 국내 대기업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지킬 수 있겠지만 더 무서운 해외 다국적 기업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 LED 조명, PC 제조 등이 그랬다. 삼성과 LG의 제조와 생산은 막았지만 필립스, 레노버 등 글로벌 업체를 막을 수 없었다.

정부가 시장 개입을 법제화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시장 경쟁에 의해 신기술이 등장하고 경쟁해서 도태돼야 하는데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 막을 법적 장치가 충분한데도. 카풀 문제도 그랬다. 카풀이나 우버를 활성화시켜야 하지만 택시 기사 표를 의식해 외면했다.

생태계는 갈라파고스를 천연기념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장은 냉혹하다. 미국에서는 4등급 무인 자동차가 시범서비스하고 있다. 한층 진화한 '무서운 자율주행차'도 연말 등장한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우버나 카풀은 과거 개념이 될 것이다.
기술 진화와 경쟁을 막는 정부와 국회, 미·중과의 무역 전쟁,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냉전이 이어지는 국제 감각이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갈라파고스다.
주필 김상용 sr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