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드라이브]재규어 I-PACE, 전기차의 품격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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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엔진의 시대에서 모터의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100년 이상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던 핵심 기술인 내연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로 위기에 처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자리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체할 친환경차로 꼽힌다.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 닛산, 현대차 등 대중 브랜드가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아가는 사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전기차 출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재규어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재규어 I-PACE.
<재규어 I-PACE.>

재규어는 가장 빠르게 시장 변화 대응에 나선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다. 역사상 첫 양산형 전기차 'I-PACE'를 내놓고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인천 영종도 일대에서 최근 국내 판매에 돌입한 I-PACE를 타고 달려봤다.

차체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형태를 지녔음에도 공기 역학적 설계를 통해 0.29Cd의 낮은 항력계수를 실현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그릴을 적용했고, 전면 범퍼에는 배터리 냉각과 온도 조절 시스템을 위한 액티브 베인(vane)이 원활한 공기 흐름을 유도한다. 주행 시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자동 전개식 플래시 도어 핸들도 공기 역학을 고려한 설계다.

재규어 I-PACE.
<재규어 I-PACE.>

외관은 재규어가 추구하는 정교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내연기관 공간이 필요 없다는 특징을 활용해 2990mm에 달하는 긴 축간거리를 확보했고, 전후 오버행은 최소화했다. 날렵한 쿠페형 루프라인과 넓은 펜더, 20인치 휠이 더해져 고성능차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재규어 패밀리룩을 계승했지만, 전기차 특성을 강조해 기존 재규어 SUV 라인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화 포인트가 아쉽다.

실내 공간 구성은 기존 프리미엄 전기차 대표 주자인 테슬라 '모델 S'와 확연한 격차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재규어는 100년 가까이 주로 럭셔리카나 스포츠카를 만들어왔다. 오랜 전통은 I-PACE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신생 전기차 제조사를 압도할 수 있는 경쟁력이다.

재규어 I-PACE 실내.
<재규어 I-PACE 실내.>

실내는 떠 있는 듯한 플로팅 디자인 센터 콘솔과 대시보드 상단 등 거의 모든 부분에 부드러운 가죽 소재를 입혔다. 시트에는 재규어 시트라벨과 콘트라스트 트윈 니들 스티치 디테일로 정교함을 더했다. 디지털 다이얼에도 시그니처 패턴 알루미늄 소재를 적용하는 등 곳곳에서 재규어만의 브랜드 감성을 표현했다.

공간 구성도 훌륭하다. 엔진이 없으니 차체 대비 공간이 넉넉해 성인 5명이 타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변속기가 사라진 센터 터널에는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고정식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재규어가 자사 차량에 처음 도입한 터치 프로 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0인치 터치스크린과 하단 5인치 듀얼 터치스크린으로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보여준다.

재규어 I-PACE 뒷좌석.
<재규어 I-PACE 뒷좌석.>

고속도로에 올라 성능을 점검했다. 페달을 밟는 즉시 힘을 뿜어내는 가속력과 민첩한 핸들링 감각이 인상적이다. 최고출력은 400마력, 최대토크는 71.0㎏·m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h 가속 시간은 4.8초에 불과할 만큼 강력했다. 넘치는 힘은 차량 앞뒤 차축에 자리한 2개의 영구 자석 동기식 전기모터가 책임진다. 각 모터는 35.5㎏·m 토크의 성능을 발휘한다.

운전의 재미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속도를 높일수록 묵직하게 차량을 이끄는 스티어링 휠이 대표적이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고성능 스포츠카를 탄 것처럼 차체를 안정적으로 지지한다. 재규어는 차량 설계 단계부터 앞뒤 차축 사이에 최대한 낮게 배터리를 장착해 50:50의 이상적인 차체 앞뒤 무게 배분을 실현했다.

몇 가지 단점도 보였다. 고성능 전기차를 지향하는 만큼 승차감은 세단보다 스포츠카에 가깝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엔진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고속 주행 시 풍절음은 거슬렸다. 회생 제동 작동 시 울컥거리는 느낌도 강했다.

재규어 I-PACE.
<재규어 I-PACE.>

주행거리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알루미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I-PACE에는 36개의 모듈을 넣은 90㎾h 배터리를 탑재했다. 각 모듈은 더 높은 전류를 오래 유지하도록 고에너지 밀도 리튬 이온 파우치 셀을 적용했다. 1회 완전 충전 시 국내 인증 기준 주행거리는 333㎞이다. 다만 시승 구간이 짧아 주행거리를 직접 측정하긴 어려웠다.

I-PACE에 적용한 배터리 매니징 시스템은 배터리 소모를 방지하고 효율성을 최적화하도록 제어한다. 에너지 회생 제동 시스템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회생 제동 기능을 활성화해 감속과 동시에 생산된 전력을 이용한다.

재규어 I-PACE.
<재규어 I-PACE.>

충전은 국내 표준 규격인 콤보 타입 1 규격을 사용한다. 50㎾h와 100㎾h 급속 충전기, 7㎾h 가정용 충전기도 이용할 수 있다. 80% 충전까지 100㎾h 급속 충전기로 40분, 50㎾h 급속 충전기로 90분 정도가 소요된다.

재규어는 국내에 충분한 전기차 인프라를 구축해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전국 26개 전시장에 완속 충전기 52기를 설치했고, 서비스센터에도 급속 충전기 26기와 완속 충전기 52기를 갖췄다. 영국 본사에서 검증한 52명의 전기차 전문 기술 인력도 서비스센터에 배치했다.

가격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은 아쉽다. I-PACE 국내 가격은 1억1040만~1억2800만원으로 책정했다. 보조금 등 여러 전기차 혜택을 받더라도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재규어가 I-PACE를 시작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전기차를 꾸준히 선보이길 기대한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