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동맹기술과 경쟁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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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임춘택 원장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임춘택 원장>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기술전쟁과 무역전쟁이 에너지 산업에도 벌어지고 있다. 기술과 시장이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된다. 에너지 산업의 미래 전망과 대응 전략 마련에는 기술 및 시장 속성 이해가 필수다. 특히 통계가 잘 잡히는 시장에 비해 무형의 지식으로서 산업의 향방을 좌우하는 기술 이해가 관건이다.

인류 역사는 도구 역사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 구분을 하는 이유다. 무기·농기구·장신구 기술이 나라 경쟁력이었다.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금속 기술과의 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전쟁에는 동맹과 경쟁이 핵심 전략이다. 엘빈 토플러가 말했듯 인류사에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으로 불리는 기술혁명이 있었다. 그때 신·구 기술 간, 신기술 간 무차별·무제한 경쟁이 발생한다.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전화와 메신저가 서로 경쟁했다.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 간 동맹도 치열했다. 무선통신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강자인 유선전화에 대항해 기지국 공유와 단말기 호환에 동맹을 과시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져서 유선전화를 압도하자 동맹은 와해된다. 스마트폰끼리 경쟁하는 사이에 구글과 유튜브가 데이터 플랫폼 시장을 장악했다. 동맹기술이 경쟁기술을 압도한 사례다.

에너지 기술에서도 화석에너지와 친환경에너지 간 동맹과 경쟁이 치열하다. 전통 강자인 석탄·석유 등 화석에너지와 경쟁하면서 약자인 원자력·재생에너지는 친환경 동맹이 됐다. 세계 전력 시장에서 석유는 석탄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 점유율이 4%도 안 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재생에너지가 주목받게 됐다. 원자력발전은 기술 혁신이 늦어지면서 경제성이 나빠졌다. 1조원대이던 원전 1기 건설 단가가 지금은 5조원을 상회한다. 반면에 지난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태양광이 8배, 풍력은 3배 각각 싸졌다. 그 결과 2017년에 세계 전력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25%를 넘어섰고 원전 비중은 10%로 축소됐다. 신규 에너지 투자도 태양광발전 180조원, 풍력발전 120조원으로 각각 확대된 반면에 원전은 19조원으로 축소됐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간 동맹은 사라졌고, 시장이 커진 재생에너지 내부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 간 경쟁이 치열하다. 재생에너지 강자이던 풍력이 2016년부터 태양광에 신규 시장 점유율을 내줬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주간에 발전하는 태양광과 야간·악천후에도 발전하는 풍력 특성상 재생에너지 동맹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태양광 발전은 영농형, 건물형, 수상형으로 분화되고 있다. 발전 효율이 22%인 실리콘과 40% 이상인 복합화합물 반도체 간 경쟁도 예고돼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0% 넘긴 독일이 계획을 앞당겨 2050년에 100%를 달성하려는 것도 이런 기술 혁신 때문이다.

클린디젤엔진이 가솔린엔진과 경쟁하는 사이 친환경차 동맹이 커지고 있다. 각종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이 주역이다. 특히 매년 50% 이상 폭증해서 260만대를 돌파한 세계 배터리 전기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3년에 2배씩 폭락하는 배터리 가격 덕분이다. 세계 각국이 퇴출 시기를 정하고 성장도 멈춘 내연기관차와 대비된다. 화석연료를 쓰는 하이브리드카가 친환경차 동맹에서 이탈하고 있다. 2005년에는 동맹 기술이던 수소연료전지차와 전기차가 이제는 경쟁 기술이 됐다. 친환경차가 신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를 넘고, 2030년대에는 내연기관차를 밀어내며 주력이 될 조짐을 보이면서 동맹은 와해되고 있다.

커지는 시장에는 반드시 신기술이 나온다. 새로운 유형의 전기차가 쏟아지는 이유다. 하루 60㎞ 가는 고효율 태양광 전기차가 나오면 배터리 전기차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무선 전기차도 노선버스나 전철은 배터리 전기차보다 2배나 경제성이 좋다. 충전 방식을 놓고 유선충전과 무선충전 간 경쟁도 시작됐다. 친환경 선박과 드론도 배터리, 가스터빈, 연료전지가 경쟁하고 있다. 매년 5400조원에 이르는 세계 교통 시장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변화를 보고 에너지기술 투자 방향을 정해 나가자.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ctrim@ke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