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비상경영' 돌입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계

[이슈분석] '비상경영' 돌입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계

# 디스플레이에 이어 반도체까지 국내 투자가 위축되면서 주요 장비기업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임원진을 중심으로 임금 동결·삭감을 시작한 곳도 있고 강도 높은 비용절감과 원가절감을 시행하는 등 위기를 돌파하는 체력을 기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모두 시장이 침체하고 투자가 불투명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2020년에 전방산업 신규 투자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올 한 해 위기를 극복하고 연구개발로 신규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졌다.

[반도체]

지난해 '반도체 초호황 사이클' 영향을 받아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도 창사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수요 부족으로 D램 메모리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관련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장비 업체 공급에도 차질이 생겨 '비상'이 걸렸다. 장비 업계는 반도체 재고 소진과 메모리 제조사 투자 재개가 예상되는 내년에 실적이 반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최고 실적 잇따라 경신=한미반도체, 제우스, 유니테스트 등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지난해 회사 창립 이래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설비 투자가 활발해지자 장비 업체 실적도 덩달아 급등한 것이다.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칩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드는 초고속메모리(HBM) 생산용 열압착 본딩 장비 '3D TSV 듀얼 스태킹 TC 본더', '플립칩 본더' 검사 시스템인 6세대 '뉴 비전 플레이스먼트' 판매 호조로 전년 동기(516억5500만원)보다 9.9% 늘어난 567억8900만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반도체 패키징 기술인 웨이퍼레벨패키지(WLP) 공정에 활용되는 장비를 판매하는 제우스도 2017년보다 18.6% 오른 391억5900만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제우스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에서 나오는 영업이익이 60%가량 차지한다”며 “지난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상당히 매출이 좋았다”고 말했다.

공정 중 웨이퍼 평탄화에 활용하는 화학기계연마(CMP) 장비를 판매하는 케이씨텍은 지난해 659억4800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디스플레이 장비도 판매하는 케이씨텍은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경기가 침체해 이 분야 장비 공급 실적에 악영향을 받았지만, 반도체 장비 공급이 예상치를 뛰어넘으면서 디스플레이 불경기를 만회하고도 남을 실적을 거뒀다.

SK하이닉스 등에 반도체 테스터 장비를 공급하는 유니테스트도 지난해 반도체 사이클 호황 수혜를 입었다. 유니테스트의 영업이익은 2017년 대비 2배 넘게 오른 718억32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위기감 증폭=하지만 호황이 지나가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한풀 꺾이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2월까지 D램 고정 거래 가격이 30% 이상 감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8조53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4%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도 2조1535억원으로, 2개월 전 예상치와 견줘 42.4%나 낮아졌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 보수적인 설비 투자로 가닥을 잡으면서 장비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1분기 실적이 나올 때가 돼서 수치를 살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아 회사 분위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올해 회사 매출이 예년보다 20% 정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장비 회사들이 주로 국내 업체에 물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대부분 업체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비 연구개발 투자를 덜 공격적으로 진행한다는 의견도 많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한해 투자 예산을 정할때 예년과 비슷한 투자를 하면 '베스트(Best)', 그보다 3분의 1정도 감소하면 '노멀(Normal)', 3분의 2정도 내리면 '워스트(Worst)'로 분류한다”며 “올해의 경우 경기가 좋지 못해 '노멀' 단계에서 예산을 책정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내년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삼성전자 평택 P2와 중국 시안공장, SK하이닉스 중국 우시공장 확장 등 현재 짓고 있는 설비가 본격 가동될 시점에 장비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실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조사에 따르면, 메모리 분야 침체로 인해 2019년 세계 팹 장비 투자액은 530억달러로 2018년보다 14%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2020년에는 27% 오른 67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내년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고 했던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소진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5G, 자율주행차 연구 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수요 증대 기대감을 높이는 중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는 '올해만 잘 버티면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한 장비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기 때문에 제품 개발 비용을 줄일 계획은 없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공장이 가동되면 장비 수요는 지속 늘어나므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정체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사업에도 눈독을 들이면서 시스템 반도체 장비 개발에 속도를 올리는 분위기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SK하이닉스도 WLP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보니 비메모리 후공정 장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사업 비중이 높은 주요 장비기업 실적은 대부분 하락했다. 대신 중국 사업 비중을 높였지만, 다수 기업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2017년보다 성장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국내 투자 줄자 장비사도 '휘청'=에스에프에이는 삼성디스플레이 투자 감소 여파로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18.7% 감소한 1조5600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도 0.4% 감소해 2349억원을 기록했다. 원가 절감 효과로 매출 감소폭 대비 영업이익을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선방했다.

삼성디스플레이 비중이 높은 AP시스템도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26% 감소한 7142억원에 그쳤다. 이 회사 2017년 영업이익은 베트남 3D 라미네이션 장비 납품에 따른 일회성 비용 발생으로 크게 감소한 바 있다. 이 영향으로 2018년 영업이익은 75% 성장한 458억원을 기록했다.

이 외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주요 장비 협력사로 빠르게 성장해 2017년 이름을 알린 업체들의 지난해 실적도 대부분 침체를 면치 못했다.

검사장비를 납품한 HB테크놀로지는 지난해 매출 2739억원으로 4%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78.8% 줄어든 101억원에 그쳤다. 영우디에스피는 2017년 영업적자 4억원이 발생했으나, 2018년에는 적자가 143억원으로 늘었다. 매출은 1462억원으로 43.3% 감소했다.

3D 라미네이션 장비를 중국에 무단 공급한 혐의를 받은 톱텍도 실적이 크게 감소했다. 2017년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으나, 2018년에는 매출이 72.6% 줄어든 3115억원, 영업이익은 94.3% 줄어든 119억원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물론 중국을 중심으로 고르게 매출처를 다변화한 기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었다.

중국 매출 비중이 큰 DMS는 매출이 11.2% 성장한 2988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85.4% 늘어난 308억원을 달성하며 2017년에 이어 성장했다. 8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증착기를 공급하는 야스는 매출이 1845억원으로 전년 대비 113.1%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442억원으로 148.9% 늘었다.

◇불투명한 국내 투자, 중국도 불안=올해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대규모 투자는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차세대 기술로 준비하는 QD-OLED(양자점-유기발광다이오드) 시험생산을 위해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전환하는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시험생산 용도이고, 기존 라인을 전환하므로 투자 규모는 2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6세대 플렉시블 OLED를 생산하는 E6의 세번째 라인 투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최근 수율과 자금 운용 상황 등을 고려하면 실제 집행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광저우 8세대 OLED 공장이 하반기 가동하면 일시적으로 운영비용이 상승하는데다 파주 P10 공장에도 투자해야 한다. 최근 실적 하락까지 겹쳐 투자 부담이 더 커졌다.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현지 투자 분위기도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현지 투자 기조를 놓고 업계 의견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우선 지난해 계획 대비 투자 집행 규모가 적어 올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반면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부채율을 엄격히 관리하면서 총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지방 정부에서 조달받는 현지 패널 제조사들이 투자재원을 마련하기가 까다로워졌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6세대 플렉시블 OLED 공급이 시장 수요를 초과한 것도 추가 설비 투자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업계는 올해 중국에서 6세대 플렉시블 OLED는 BOE 'B12'와 비전옥스 'V3' 투자 가능성이 짙다고 내다봤다. 이 외에 차이나스타(CSOT) 10.5세대 LCD 'T7'도 실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봤다. 로욜과 티안마 등도 올해 플렉시블 OLED 투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투자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당장 올해 실적 개선에 반영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매출 인식 기준이 계약 기준에서 장비 인도 기준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장비를 고객사 생산라인에 반입한 뒤 설치하고 초기 가동까지 완료해야 매출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올해 수주한 프로젝트가 내년 실적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2020년부터 중국 투자 열기가 한 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주요 패널 제조사들이 올해 6세대 플렉시블 OLED 투자를 대부분 마무리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투자했던 생산 라인에서 수율을 높이고 생산량을 늘려나가는데 집중하는 단계에 돌입하는 추세다.

장비기업 한 관계자는 “2020년 삼성디스플레이 QD-OLED 양산투자와 LG디스플레이 P10 투자 등이 이뤄지면 올해보다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어려운 시장을 잘 헤쳐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