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금강불괴 '물곰'

물곰. 위키피디아
물곰. 위키피디아

'물곰(water bear)'이 연구계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능력 때문이다. 물곰은 완보동물문에 속한다. 플랑크톤 등을 주로 먹고 사는 최대 1.5㎜ 크기 작은 동물이다. 곤충에 가깝지만 생김새가 물속을 헤엄치는 곰 같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AP통신에 따르면 물곰 특성을 활용한 연구가 다양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일본은 물곰 단백질을 자외선 차단제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미국 국방부 장기 연구지원팀은 지난해 말 500만달러 규모 연구비를 투자했다. 인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곰 유전자 연구를 추진한다. 물곰이 스스로 건조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백신이나 혈액을 보존하는 데 쓰일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혈액 보존 기간은 최대 6주 정도다. 혈액을 건조 상태로 보관할 수 있으면 전장에서 부상자가 자기 피를 수혈 받을 수 있고 평소 혈액 보관·운반량도 늘릴 수 있다.

물곰이 연구 대상으로써 가치를 인정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곰이 속한 완보동물문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거뜬히 생존한다. 단순히 덥고 추운 환경에서 버티는 정도가 아니다. 완보동물은 지금까지 1200종 가량 보고됐다. 서식지는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주로 습기가 많은 환경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백도에 달하는 고온의 온천수나 극지방의 얼음 속에서도 발견됐다. 말라야의 고봉, 수심 4000미터 이상 심해에서도 서식했다. 일반적으로 영하 270도 이하, 150도 이상 고온을 견디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전 남극에서 채취한 후 영하 20도(℃)로 냉동됐던 물곰이 깨어나 알을 낳은 사례도 있다.

2007년 9월 유럽우주기구(ESA)는 우주 실험위성 FOTON-M3에 건조한 물곰을 실었다. 우주공간에 직접 노출시켜 생존력을 실험하기 위해서다. 각기 다른 환경에 노출시켰다. 하나는 우주선을 조사했고 하나는 태양광에 노출시켰다. 물곰은 10일 동안 우주 진공에 노출됐다. 우주선만 쬐인 물곰은 거의 다 살아남았고 번식까지 했다. 태양광에 노출된 곰벌레는 거의 죽었지만 생존한 개체가 발견됐다. 살아남은 물곰은 손상된 DNA를 스스로 고쳤다. 사람 치사량 1000배에 해당하는 5000그레이(Gy) 감마선에 48시간 노출하자 생식능력을 잃었지만 죽지 않았다.

이런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물곰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벌어진 5차례 대멸종을 모두 견딘 것으로 추정된다. 하버드대 연구 결과 소행성 충돌이나 우주 폭발 환경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금강불괴' 물곰의 비밀은 단백질에 있다. 2016년 일본 도쿄대 구니에다 다케카주 교수 연구진은 물곰 DNA를 해독해 'Dsup' 단백질을 찾았다. 물곰이 방사선을 맞으면 이 단백질이 DNA를 감싸 보호했다. DNA 파손 정도가 40% 가량 감소했다. Dsup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사람 신장 세포에 넣었을 때도 효과가 비슷했다.

물곰은 이외에도 유해 활성산소를 막는 유전자가 16벌 갖고 있었다. 다른 동물에서는 이 유전자가 보통 10벌 정도만 있다. 손상 DNA를 수리하는 유전자도 다른 동물 대비 4배나 많은 4벌이나 있었다.

연구계는 지구가 극한 환경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생존 열쇠를 물곰 등 완보동물문에서 찾고 있다. 성과도 나왔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생물학자인 토머스 부스비 박사는 물곰이 휴면기로 들어갈 때 발현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효모에 주입했다. 효모는 이후 가뭄에 대한 내성이 100배나 더 강해졌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