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1678년 조선 인조대 학자 홍만종이 펴낸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는 우리가 흔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속담으로 알고 있는 사자성어 '묘항현령(猫項懸鈴)'이 등장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쥐들이 고양이의 폐해(?)를 어떻게 막을 지 상의하다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고양이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겠는가'라는 문제에는 어느 쥐도 나서지 못했다. 심히 어려운 일을 두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을 하는 이유다.

이 속담을 떠올린 것은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힘겨루기는 마치 두 마리 고양이 목에, 그것도 동시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중재자로서 모두를 만족시킬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안으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취임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는 각종 경제 정책 실패와 정권 내부 인사 난맥상 등으로 추진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 80%대를 오가던 지지율은 최근 41%까지 떨어졌다. 대선 당시 지지율과 비슷해서 새로 유입된 지지율을 다 까먹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권의 어느 누구도 자기 몸을 바쳐 난맥을 뚫고자 나서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범위를 좁혀 에너지 정책은 어떤가. 정부 출범 초기에 '탈(脫)원전'을 기치로 내건 에너지 전환 정책 시행으로 말미암아 에너지 업계는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한 채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비상경영 계획까지 세워 대비했지만 강원도 산불 등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한전이 이런 상황이니 에너지 공기업은 물론 민간 에너지업계까지 잔뜩 움츠러들었다.

정부는 어떤가. 현 정부 임기 내에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명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요지부동인 전기요금이 가까운 미래에 어떤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든다.

에너지 전환 정책도 방울을 달 때가 됐다. 한전이 힘들어 하니 무조건 전기요금을 인상하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중장기 에너지 수급과 관련해 현행 전기요금 체계의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누진제 개편, 연료비 연동제, 계시별 요금제 등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 '전기요금 인상'이 아니라 '전기요금 현실화'로 접근해야 한다.

또 원전의 지속적인 감축에 대한 국민들의 진정한 선택은 무엇인지, 아무렇지 않게 과소비되고 있는 전기 에너지에 대한 수요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 후 핵연료는 과연 언제까지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은 내 책임이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며 고개를 돌리면 공멸 공산만 커진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힘 센 쥐가 해야 할 일이다.

양종석 미래산업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