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힘겨운 보릿고개'…"첨단 기술로 활로 찾아야"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올 1분기 우울한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부진이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설비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디스플레이 장비 생산을 병행하는 업체들은 얼어붙은 디스플레이 업황 영향까지 받았다. 업계는 하반기 회복세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불황 극복을 위해 첨단 장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일 세메스, 원익IPS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 상장사 10개의 올 1분기 실적을 집계한 결과 10개 업체 영업이익 모두 전년 동기 1분기보다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세메스는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898억6900만원을 남겼지만 올해는 135% 감소한 317억97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10개 업체 중 감소 폭이 가장 두드러지는데다 1분기 추이만 놓고 보면 3년 만의 적자다.

증착·열처리 장비를 생산하는 원익IPS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71% 감소한 63억8900만원으로 집계됐다. 후공정 장비를 주로 공급하는 한미반도체는 지난 1분기 98% 줄어든 2억3900만원을 기록해 적자를 겨우 면했다.

이들의 실적 감소 원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글로벌 반도체 수요 부진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이 끝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다수 반도체 업체들 실적이 반토막났다. 이들이 설비 투자를 망설이자 국내 중견 장비 업체들은 더욱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게다가 이들 중 다수는 디스플레이 장비 생산까지 병행하는데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 드리운 먹구름이 쉽게 걷히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BOE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저가 액정표시장치(LCD)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국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설비 투자도 움츠러든 것이다.

제우스의 지난 1분기 'LCD 장비 및 태양전지 장비 매출'은 170억6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92억6300만원)보다 40%가량 줄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대규모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장비 업계는 올 하반기 반도체 수요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시장 추이를 보면 성수기와 비수기 기간이 짧은 대신 등락폭이 매우 커 위기 이후 큰 호황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며 “우선 하반기 주요 소자 업체들의 투자 결정 시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소자 업체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설비 투자가 부진한 시점에 특화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 세계적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리서치, ASML, 도쿄일렉트론(TEL) 등 외산 주요 장비사도 올 1분기 반도체 불경기 영향을 받았지만 감소폭은 20~30%인데다 영업이익률도 20%대를 유지했다.

업계에서는 “이들은 업황이 악화해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기술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한 국내 장비업체 대표는 “인텔, TSMC 등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겠지만 국내 기업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선행 기술 개발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힘겨운 보릿고개'…"첨단 기술로 활로 찾아야"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