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판 어벤져스'로 무역기술장벽(TBT) 뛰어넘어야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 29일 만에 1350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주를 수호하기 위한 슈퍼 히어로들과 악당 타노스 간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되고, 섬뜩한 무기가 등장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천둥의 신 토르와 서커스 소년이던 호크아이까지 10여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 흡사 미래 전쟁 양상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상황은 꼭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무역 현장에서도 영화 속 세상만큼이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주요 국가들이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며 기상천외한 전술을 구사하고, 때로는 타노스와 같은 강력한 복병이 나타나 세계 무역질서를 한바탕 헤집어 놓는다.

자국의 안보를 명분으로 무차별 발동되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첨단 산업에 킬러 소재가 되는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 국제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각종 기술 규정과 표준 인증제도 남발 등 무역기술장벽(TBT)은 영화 '어벤져스'의 악당 타노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국내 기업이라고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던 국내 기업의 8K 초고해상도 TV가 수입국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맞출 수 없어 수출이 좌절될 뻔했다. 해당 국가의 에너지 효율 기준이 4K TV 해상도에 맞춰 운영되고 있어 이 기준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입국의 기술 기준이 수출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TBT로 작용한 셈이다.

정부는 업계와 관련 협회, 시험인증기관 등으로 즉각 TBT 신속 대응 팀을 꾸려서 가동했다. 세계무역기구(WTO) TBT 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국가와의 양자 협상, 관심 국가와의 국제 공조를 도모했다. 결국 초고해상도 TV에는 기존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인정을 끌어냈다. 이는 정부와 함께 이해 당사자 모두가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타노스에 맞서 '한국판 어벤져스'로 똘똘 뭉친 결과다.

그러나 문제는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 규제, 즉 기술 타노스에 효과 높게 대응하기 위해 더욱 체계화한 항구 전략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날로 지능화되고 정교해지는 TBT에 더욱더 효과 높은 실질 대응을 하기 위해 한국판 어벤져스 같은 강력한 TBT 대응 제도를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첫째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적의 전력 상황, 지형지물 등 상세한 정보는 전쟁 승리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에 따라서 TBT 전용 사이트를 구축, WTO에 통보된 기술 규제는 물론 통보되지 않은 기술 규제 정보를 제공해 국내 기업이 해당 규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둘째 전략과 전술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TBT 사안에 대해 정부와 관련 기관, 학계, 업계 전문가로 TBT 대응 지원단을 구성하고 합리화 대안을 마련해서 대응한다.

셋째 단순 정보 제공만으로는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는 기업 맞춤형 현장 컨설팅을 제공해 나간다. 이는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에게 우리 군에 대한 훈련, 병참계획 수립 등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외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최대 무역 파트너인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고,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는 주력 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해야 하는 시점이다. 산업 구조 틀을 새롭게 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TBT는 신무기 개발을 촉진하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정부와 기업, 유관 단체가 모두 어벤져스 슈퍼 히어로가 돼 함께 TBT라는 무역 타노스에 맞선다면 세계 시장은 우리에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 원장 swlee12@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