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CEO 코드<11>마틴 쿠퍼-벽돌폰은 혁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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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CEO 코드&lt;11&gt;마틴 쿠퍼-벽돌폰은 혁신이었다

스마트폰 무게가 40㎏이라면 어떨까. 10㎏이라면. 한때 이동통신 단말기가 40㎏, 10㎏ 남짓하던 시기가 있었다. 카폰 시절 이야기다. 지금부터 30여년 전, 마틴 쿠퍼가 나타나기 전에는.

휴대폰의 아버지 마틴 쿠퍼.<제공:위키피디아>
<휴대폰의 아버지 마틴 쿠퍼.<제공:위키피디아>>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벽돌 만한 휴대폰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백발의 아저씨, 그가 마틴 쿠퍼다. 벽돌폰, 신발폰 아버지다. 경박단소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세대야 그가 들고 있는 벽돌폰이 개그 소재감이겠지만 당시 이동통신 단말기(셀룰러폰)를 손에 들고 통화한다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것보다 더 혁신적이었다.

“조엘, 나 진짜로 셀룰러폰으로 전화하고 있다네!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말일세!” 최초 휴대폰 개발자 마틴 쿠퍼의 첫 통화 내용이다. 그 대상은 벨(Bell)연구소 연구원 조엘 엥걸이였다. 약 좀 올릴 겸, 자랑도 할 겸 수다를 떨었다.

그때 그가 개발한 휴대폰 수준은 보잘 것 없었다. 크기는 25㎝, 무게는 1㎏이 넘었다. 벽돌 크기여서 벽돌폰, 신발을 닮았다 해서 신발폰(shoe phone)으로 불렸다. 하지만 의미는 남달랐다. 전원을 꼽지 않고 선을 연결하지 않고 인간이 들고 다니며 통화하는 양방향 무선통신 단말기였기 때문이다.

기능은 세 가지였다. 번호 누르는 기능, 발신(SEND) 기능, 수신(CALL) 기능이다. 액정이라고는 전자손목시계에 들어가는 흑백 모니터 창이 전부였다. 문제는 배터리다. 10시간 충전하면 20분 정도 사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늘 차에 충전기를 꽂고 다녀야만 했다. 충전 후 잠깐 '벽돌'과 '신발'을 갖고 다니다가 얼른 돌아와서 차량용 충전기에 재충전하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

1㎏ 넘는 물건을 20분 이상 들고 있으려면 손과 팔이 저려 왔다. 1㎏짜리 아령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벽돌폰을 담을 수 있는 조금 큰 '일수 가방'이 필요했다. 그래도 고소득 전문직 사이에서는 인기폭발이었다. 한마디로 '뽀대' 났다. 구매도 개통도 힘들어 '빽'이 있어야 겨우 살 수 있었다.

마틴 쿠퍼는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나오는 커뮤니케이터에서 힌트를 얻어 휴대폰을 개발했다. 주인공이 들고 다니며 우주 어디서도 통화가 가능한 단말기, 그것에 주목했다. 그는 통신 목표를 재설정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한 꿈을.

선이 있거나 차량용 안테나와 배터리 충전이 자유로운 곳이 아닌 인간이 서 있는 그 장소에서 바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상식적'이고 '인간중심적'인 목표였다. 쿠퍼 목표는 모토로라 목표가 됐고 모토로라를 세계 최고 이동통신 단말기 업체로 성장시켰다. 쿠퍼 목표는 이 시대 모든 통신 연구원들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통신은 인간을 네트워크로부터, 빈부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인간이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은 직립보행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지는 것만큼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며 정보 독점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다. 통신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민주적이다. 통신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국가와 국가, 도시 농촌 간 자유로운 소통이 일어난다. 통신은 여러 독재국가로부터 자유를 매개했다.

선으로부터, 차량으로부터, 배터리로부터, 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롭게 통화하는 것을 꿈꾼 마틴 쿠퍼로부터 세상의 혁신이 시작됐다. 그것은 모든 이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보화 혁명의 시작이었다. 대단한 통찰이었다.

박선경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