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에너지 안전불감증

최재필 전자신문 미래산업부 기자.
최재필 전자신문 미래산업부 기자.

강원도 고성 산불(4월 4일),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5월 5일), 한빛 원전 1호기 수동 정지(5월 10일), 강릉 수소탱크 폭발(5월 23일). 두 달 사이에 발생한 에너지 관련 사고다. 국민 불안감은 커졌지만 원인 규명이나 안전대책 마련은 감감무소식이다.

ESS 화재는 2017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무려 22곳에서 연쇄 발생했다. ESS 사업은 정부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을 펼치면서 크게 기대되는 분야다. 그러나 2년이 넘도록 화재 발생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면서 산업 생태계는 처참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개폐기 연결 전선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고성군의 산을 잿더미로 만든 것은 안전관리 부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었다.

5월 초 한국전력 경산변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배터리 1개동(16㎡) 등이 불에 탔다. 이 지역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중인 모습.
5월 초 한국전력 경산변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배터리 1개동(16㎡) 등이 불에 탔다. 이 지역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중인 모습.

한빛 원전 1호기는 열 출력이 제한치(5%)를 초과한 지 11시간 반이 지나서야 가동이 멈췄다. 발전소 가동을 즉시 멈춰야 한다는 기본 원칙도 지켜지지 못한 채 11시간이 넘도록 방치된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면허도 없는 정비원이 원전 제어봉을 조작한 것은 나태해진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온 수소마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탱크 폭발사고'를 일으키며 안전 의구심을 키웠다.

정부가 탈 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원자력발전의 가동을 멈추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게 명분의 핵심이었다. 바람과 달리 연이은 에너지 관련 사고는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최대 35%로 확대하고 수소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고 원인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원인 없는 사고는 없다. 온전히 의지에 달렸다. 또 사고와 직접 연관이 없는 부분까지 깊이 들여다보고 '제2의 사고'를 막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법제화를 통해 이행을 의무화하는 건 필수다. 마지막으로 사고와 관련해 공공기관이든 민간 기업이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고,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안전 앞에서는 인정사정 봐줄 필요가 없다.

100% 안전한 에너지원은 없다. 안전을 수천 번 수만 번 강조해도 부족한 까닭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국민 안전을 지켜 주지 못한다면 국가 미래는 없다. 정부는 '보여주기 식' 사태 수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 사고 원인 규명과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에게 트라우마나 남기는 정부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