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혁신은 왜 어려운가?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필자는 대학생 시절에 물리학을 전공했다. 어려운 이론 이해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어려운 것이 또한 물리학의 매력이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같은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물리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지닐 수 있었다.

물리학을 시대와 연구 대상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선택된 하나 또는 두 개 입자의 연구가 주요하던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이다. 미시 동역학 이론이라 할 수 있는 고전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이 여기에 속한다.

고전역학에 매료된 어떤 이는 미래는 결정돼 있으며,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측하고자 하는 입자가 3개 이상이 되는 순간부터 물체 사이 힘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쥘 앙리 푸앵카레에 의해 증명됐다.

그에 따라 시스템 내에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입자 운동을 예측하기 위해 등장한 열역학과 통계역학이 두 번째 시기인 20세기 중·후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1세기는 시스템 내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넘어 열린 시스템에서 수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현상을 다루는 복잡계 과학이 대표한다.

시대가 지나갔다고 해서, 한계점이 드러났다고 해서 그 이론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전역학은 수많은 물리 현상을 설명하고 있으며, 각각의 이론은 더욱 깊고 넓게 확장되고 있다. 한계점이 보이면 그것을 넘어설 방법을 찾고,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과학 기술로 일으켜 세우겠다는 기치 아래 출연연이 설립됐다. 과학 기술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이 공동의 목표였으며, 연구자들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과학 기술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한국건설기술연구원·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연구 분야별로 연구기관이 설립됐고,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돼 많은 연구기관이 대전시에 결집하게 됐다. 각 연구 기관들은 해당 분야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끌었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연구 기관에 요구하는 사항은 다변화되기에 이르렀다. 연구 기관들은 기관 고유의 과학 기술 연구를 수행하면서 그 성과가 기업의 기술 혁신을 앞당기도록 지원하는 한편 국토 균형 발전, 인재 양성,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그런 만큼 출연연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과거에는 한 가지 목표에만 전념하면 됐지만 지금의 출연연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사회 조직 변화를 고속도로에서 각기 다른 속력으로 달리는 차에 비유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고 시민단체 90마일, 가족 60마일, 노동조합 30마일, 정부 25마일, 공교육 10마일, 유엔을 비롯한 다국적 기구가 5마일, 정치 조직이 3마일, 법과 법 기관이 1마일로 각각 변화한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출연연은 어떤 속력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출연연의 상황을 토플러의 말에 빗대 보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연구자들의 의견이 다르고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대학, 국민이 출연연에 바라는 바가 모두 다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각자 다른 의견과 요구를 반영해 방향을 설정하고 혁신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고, 한계가 있다면 넘어서는 것이 과학 기술의 역할이지 않은가. 변화와 혁신 주체로서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혁신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의 출연연이 해야 할 임무이자 역할이다. 다만 무작정 속력을 내고 달려가는 것은 금물이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올바른 방향과 적합한 속력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wohn@n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