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75>혁신조직 101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얼마 전 한 기업 대표와 티타임을 함께할 때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부서에서 독립했다. 그러다보니 연구소 문화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직급과 위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불거졌다. 책임감은 차츰 떨어졌고, 궂은 일은 남에게 떠밀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은 최신 경영 기법이 어떻게 말하든 분명한 책임과 권한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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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조직은 어떤 것일까. 다양한 경영 필독서가 말하는 상식은 긍정 사고 방식에 의한 실험 정신, 실패에 대한 관대함, 협력하는 비위계 분위기이다.

그러나 정작 이것이 답일까. 그렇기엔 많은 최고경영자(CEO)의 고민은 깊어 보인다. 지극히 이상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 현실을 달라 보인다. 뭔가 빠진 게 있는 것은 아닐까.

게리 피사노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생각도 비슷하다. 현실은 이런 요소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을 살펴보기로 했다. 결론은 동전엔 두 단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감춰진 뒷면은 상식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첫째 상식은 실패에 대한 관용이 혁신 조직의 대전제라고 말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픽사를 예로 든다. 그러나 이들에겐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어느 기업보다 생존 경쟁이 치열했다. 물론 이곳에서 실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원인이 평범함, 엉성함, 나태함에서 왔다면 다른 얘기가 된다.

둘째 상식은 혁신 조직이 위계 성격을 띠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수평 조직이 유행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역전제가 하나 있다. 위계가 없다는 것은 강한 리더십을 전제로 가능했다. 왜 애플·구글·아마존·픽사를 생각할 때 스티브 잡스, 에릭 슈밋, 래리 페이지, 제프 베이조스를 떠올리게 되는지 생각해 보라.

셋째 위험을 안는 만큼 책임도 분명했다. 폴 스토펄스가 맡은 존슨앤드존슨(J&J) 제약사업부가 기대한 신약이 임상에서 실패한다. 이사회에 불려간 스토펄스는 실패 원인을 묻는 질문에 자기 자신이라고 답한다. 스토펄스는 책임은 위험 감수를 반복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고 본다. 티보텍비르코란 바이오벤처를 설립하기도 한 스토펄스의 금언은 '실험은 당신이, 책임은 내가'다.

넷째 직무 규율과 직업의식도 더없이 분명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금언은 혁신 기업의 문화를 잘 대변한다. “누구든 이 계획에 결함을 봤다면 주저 없이 비판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다.”

101(원오원). 별반 뜻 없어 보이지만 대학가에선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각 전공의 입문에 해당하는 초급 과정이나 기초 과목에 배정되는 번호다. 그래서 대개 모든 과목의 선수 과목이 된다. 종종 이 과목을 수료하지 않았다면 상급 과목은 아예 신청할 수 없다. 기초, 토대, 근본을 가르치는 관용어구나 마찬가지다.

혁신 기업이 말하는 혁신 조직의 101은 상식과 다르다. 상식은 긍정 사고방식으로 임하는 실험 정신, 실패에 대한 관대함, 협력하는 비위계 분위기이지만 이것들은 무책임에 대한 경계, 잔인할 정도의 비판, 실패에 대한 책임 그리고 리더십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피사노 교수는 두 가지 조언을 한다. 첫째 혁신은 생각만큼 안락하지도 않고 분홍빛도 아니다. 둘째 이 불편한 진실을 솔직해져라. 경영 필독서는 짐짓 눈을 감았지만 어쩌면 내가 만난 분사한 회사 대표의 생각은 일리가 있는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