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패스트 팔로어'로 성장한 韓경제…“이제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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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1953년 67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06년 2만달러로 늘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세계에서 유일한 '국제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 “잘 살아보자”는 국민 의지와 특유의 성실함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새로운 제품·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 전략과 융합해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지난날의 '다이내믹 코리아'는 찾기 힘들다. 2017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했지만 지속 유지가 힘들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경제성장률은 2%대로 낮아졌고 그간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주력산업은 위기에 직면했다.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면서 수출 전반이 흔들렸다. 여기에 일본의 수출규제로 소재·부품·장비 부문 열악한 산업구조가 드러나며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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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빈국에서 세계 12위 경제국으로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최빈국'이었다. 휴전이 이뤄진 1953년 1인당 GNI는 67달러였는데, 2019년 현재 3만달러와 무려 447배 차이가 난다.

국가의 전반적 경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447억원(명목 기준)에 불과했다. 2018년 GDP는 당시보다 4만2000배 많은 1893조4970억원이다. 2017년 GDP 기준으로 우리나라(1조5002억달러)는 세계 12위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질 GDP 기준(명목 GDP에서 물가변동 요인 제거)으로 우리나라는 1953~2014년 61년 동안 연평균 7.3% 성장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1961~1991년 30년 동안에는 연평균 9.7%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2000년대 이후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연평균 약 4% 성장률을 보였다. 2%대 성장률마저 불확실한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1953년부터 작년까지 GDP가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1980년, 1998년 두 차례 뿐이다. 1980년에는 2차 석유파동 영향으로 1.7% 감소, 1998년에는 외환위기로 5.5% 감소를 기록했다. 두 해를 제외하면 우리 경제는 지난 60여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해온 것이다.

◇주력산업, 농업→제조업·IT로 변화…주효했던 '패스트 팔로어' 전략

1953년 우리 산업의 중심은 농림어업 등 1차 산업이었다. 1953년 농림어업이 전체 산업생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절반(48.2%)에 달했고 제조업, 서비스업은 각각 7.8%와 40.3%였다.

김도훈 전 산업연구원 원장은 '한국 산업발전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1948년 건국 이후 한국 경제가 본격적 경제발전을 시작하기 전인 1960년대 초까지는 농림어업 즉, 1차 산업이 이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1960년까지 농림어업이 전체 경제의 40% 전후를 차지한 데 비해 제조업은 10%를 겨우 넘는 수준을 보였고 수출 면에서도 제조업이 전체의 4분의 1 전후에 머물고 있었던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들어 우리 산업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에 나서면서 제조업 비중은 1979년 24.0%까지 높아졌다. 제조업이 주요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기술발전이 함께 이뤄졌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함께 추진된 기술발전이 지금의 정보기술(IT) 등 과학기술 수준을 끌어올린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김 전 원장은 “공업화 속도에 비례해 이에 필요한 기술도입·개발이 중요한 관건으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어 “초기에는 이른바 턴키 방식 공장을 건설하는 등 기술도입을 통해 공업화에 필요한 기술을 충당했지만 1970년대 이후 점차 자체 기술개발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능·기술인력 양성, 국내 연구 역량 확충에 힘쓰게 됐고 이렇게 시작한 기술개발 노력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발전의 근간이 됐다”면서 “이 시기 중요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설립된 것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산업에서 IT가 두각을 드러냈다. IT의 발전은 제조업 수준 전반을 끌어올렸고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할 기반을 닦았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는 등 정보화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업종으로는 반도체, 석유화학, 석유제품, 철강,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이 꼽힌다. 해당 분야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다.

패스트 팔로어는 말 그대로 선발주자를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이다. 선발주자를 벤치마크해 이보다 개선된 제품·서비스를 내놓는 식이다.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스마트폰 사업을 늦게 시작했지만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1위를 달성한 것이 대표 사례다. 스마트폰 외에도 우리 주요 산업이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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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고착화, 주력산업 위기…“달라져야 산다”

최근에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제성장률이 2~3%대에 머무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 됐고 2000년대 들어 본격화 된 '새로운 먹거리 찾기'가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출 전반이 흔들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953~2014년 연평균(7.3%)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은 2009년 0.8% 성장에 머무른 후 기저효과로 2010년 6.8%를 기록했지만 이후엔 한 차례도 4%도 넘지 못했다. 작년엔 2.7% 성장률을 기록했고 올해는 2%대도 위험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저성장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 주력산업도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주력산업의 위기와 활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에 위기 조짐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CIP 지수가 2014년까지는 한국이 중국을 앞섰지만 2015년 추월당했다. CIP 지수는 국제연합공업개발기구(UNIDO)가 매년 발표하는 것으로 1인당 지표(제조업 1인당 부가가치 등), 제조업 부가가치의 국가 내 위상, 수출 지표 등을 평가한다.

중국은 2005년 CIP 지수가 세계 17위에서 2010년 6위로 급상승했고, 2015년 한국과 미국(4위)을 제치고 3위로 부상했다. 반면 한국은 2009~2014년 4위를 유지했지만 2015년 5위로 하락했다.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열악한 구조도 현실 문제로 부각됐다. 제조업 발전은 결국 이를 뒷받침하는 독자적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이 뒷받침 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한국은 2010년까지 총요소생산성이 꾸준히 올라가는 등 황금 시기를 겪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기술발전, 무역의 글로벌화, 투자의 글로벌화 덕을 봤다”면서 “2010년 이후로는 그러지 못하면서 과거보다 성장엔진이 둔화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자생력을 갖춘 산업구조로 전반을 재편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기 위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평가다.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기업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우리 기업이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퍼스트 무버는 먼저 하는 것이다 보니 '누구보다 빠르다'가 없다.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명목 GDP 현황(자료:통계청, 한국은행, 단위:원)

최근 월별 수출 추이(자료: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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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패스트 팔로어'로 성장한 韓경제…“이제 달라져야 한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