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83>카테고리 지향 혁신

“어느 주방용품 기업이 신제품 출시 행사에 초청했다. 브랜드와 혁신전략을 싱크하고 싶다고 한다. 여느 행사처럼 새 브랜드 이미지며, 고객들의 바람이 행사 내내 소개됐다. 수많은 제품을 보며 조언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요즘만큼 신제품이 흔했던 적이 있을까. 얼마 전까지 몇 브랜드뿐이던 카테고리가 수많은 제품으로 넘쳐난다. 시장은 과잉 성숙되고 차별화란 어려워 보인다. 틈새시장이 남아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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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레트를 한번 보자. 첫 면도기인 양날 블루 블레이드는 1930년에 첫 선을 보였다. 2중날 버전인 트랙Ⅱ는 40년이 지난 1971년 출시했다. 3중 날을 가진 마하3는 1998년 출시됐다. 2010년 드디어 5중 날 퓨전이 나온다.

날을 하나 추가하는데 30~40년 걸렸다. 마하3에서 퓨전 사이에는 고작 10년이 있다. 이뿐 아니다. 그 사이 면도날이 얼굴 곡면 따라 움직이는 이른바 '피벗 헤드'를 가진 아트라가 1977년, 윤활밴드 붙인 아트라 플러스는 1985년, 면도날에 스프링을 붙인 센서가 1990년에 나왔다.

마하3과 퓨전 사이엔 터보, 파워, 파워니트로 같은 마하3 변종이 끼어 있었다. 퓨전은 2014년엔 360도 피봇 헤드를 가진 프로글라이드, 2016년엔 입체 윤활밴드가 달린 프로쉴드란 변종이 나왔다.

이런 제품 카테고리는 얼마든 있다. 럭셔리 호텔 체인은 한때 '숙면 혁신'을 놓고 경쟁했다. 웨스틴 호텔이 헤븐리 베드로 시작한 경쟁에 다른 호텔체인들은 세러니티, 리바이브, 그랜드, 슬립넘버, 슬립 어드배티지 같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침대 가득 채운 매트리스와 쿠션을 남긴 채 과잉 서비스로 기억에 남았다.

이런 과잉성숙 시장에서 혁신은 어느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상식은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트렌드을 따라가는 것이다. 경쟁제품 장점을 베낀다. 철새가 떼로 날 때 방향과 속도를 맞추지 않으면 낙오한다.

두 번째는 초세분화(hyper-segmentation)다. 취향을 더 나누고 세분화한다. 청량음료라면 맛과 색깔을 추가하고 제로 칼로리, 제로 카페인, 거기다 미네랄과 비타민을 이리저리 묶어서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내놓는 것이다. 이러면 혁신전략도 단순해진다. 성능을 높이는 제1원칙, 새 기능을 추가하는 제2원칙이면 대충 정리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과연 정답일까. 오늘 뭔가를 바꾸면 내일 다른 뭔가가 나오는, 제품과 브랜드에 지친 이런 시장에는 어떤 혁신이 바람직할까.

게토레이는 한 가지 실마리를 준다. 게토레이는 코카콜라가 파워에이드를 출시하자 시장 점유율이 바닥을 쳤다. 더 많은 음료 맛과 종류를 내놨지만 수익률만 더 떨어졌다. 해결책은 G-시리즈였다. 탈수방지 음료 앞뒤로 제품을 넣었다. 운동 전에 경기력을 높이는 에너지바, 경기 후 회복 돕는 단백질 쉐이크를 넣었다. 게토레이 구호는 '완벽한 경기를 위한 제안'이었고 이렇게 제품 카테고리를 탈바꿈했다.

철새 떼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고 한다. 주위 새들과 일정 간격을 둘 것, 같은 방향으로 날 것, 속도는 보조를 맞출 것. 우리가 하고 있는 혁신도 실상 이런 군집행동에 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시장이 경쟁제품으로 넘쳐날 때 어떤 혁신이 필요할까. 제안은 세 가지였다. 제품 하나하나 대신 카테고리 전체에 초점 맞추자. '어디에' 대신 '어디로'에 답을 찾자. 그리고 함께 날아야 할수록 장점을 더 가치 있게 보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