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65>상상 없이 미래도, 미래 정책도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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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여러 국내 미디어가 영국발 뉴스로 '50년 뒤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란 기사를 실었다. 이것은 28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미래기술 보고서를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이 기사가 런던발 기사로 우리 언론에 소개된 배경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우선 삼성전자가 영국의 유명 미래 테크구루와 미래학자들에게 의뢰했다. 이 보고서의 원제인 'Samsung KX50'에서 유추되듯 런던 킹즈 크로스에 문을 연 체험 매장인 Samsung KX 개관에 맞추어 추진된 것에 그 연유가 있는 듯하다.

이런 사연이야 어떻듯 언론이 전하는 이 보고서엔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다. 실상 여기 실린 미래 모습을 상상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물론 과거라고 이런 미래 예측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 과한 관심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1965년 원로 만화가 이정문 화백이 그려낸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에 실린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신문, 전기자동차, 개인용 컴퓨터, 청소로봇, 원격진료, 원격교육, 휴대폰 등은 대부분 구현됐거나 실용화됐다. 1996년 모토로라가 새로 개발한 셀룰러폰에 '스타텍'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30년 전 방영을 시작한 TV시리즈 '스타트렉'에 등장했던 커뮤니케이터에서 영감을 받았던 어느 개발자의 헌사이기도 했다.

그동안 이런 SF영화며 미래 보고서를 접하며 조금은 씁쓸한 이유는 이런 상상을 실현하는데 우리가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자책이었다. 삼성전자 미래 보고서에 의미를 찾는 것은 앞으로 50년이야말로 우리가 앞서 상상하고, 그 실현해 앞장설 첫 무대가 아닐까하는 기대와 설렘을 가지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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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우리의 현재는 그리 녹록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 제품을 역설계 하는데 익숙해 왔고, 그러다 보니 기술개발이란 대개 조금 성능을 높이는 점진적 혁신에 치중했다. 미래를 상상해 보는 지적인 측면에도 우리 사회는 그리 경험이나 내놓을 만한 결과물이 많지 않다.

그런 만큼 미래 보고서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추진하는 '선도형 과학기술 이니셔티브' 같은 프로젝트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술 발전 궤적을 예측하며 연구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꿈꾸고 바라는 미래 모습 속에서 그것을 실현해 줄 기술을 찾는 것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에 두 가지를 바란다. 첫째, 24조원을 넘어선 연구개발(R&D) 예산의 극히 일부로라도 4차 산업혁명으로 구현될 미래 그 너머의 연구를 해봤으면 한다. 지금 당장의 화두가 산업원천기술개발과 한발 앞까지 다가온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는데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진정 극복하는 방법은 그만큼 더 앞선 미래에서 이 일이 반복되지 않게 준비하는 것 아닐까 싶다.

둘째는 기술과 인문 지식을 함께 과학이란 이름으로 묶어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학문 분야 간 울타리는 높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거나 그런 노력조차 별나게 보는 것이 은연 중 사실이다. 이번 '선도형 과학기술 이니셔티브' 프로젝트엔 과학기술자와 SF 작가 같은 인문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 확산되기에 마땅한 시도라고 하겠다.

이번 삼성전자 미래 보고서 제목의 KX가 정작 런던의 킹즈 크로스란 지명을 나타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든다. '한국의 미래 상상' 같은 의미를 상징하기를 짐짓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다음 버전을 기대해야 할 듯하다. 결국 미래를 꿈꾸는 것이 이번 한번만으로 그칠 것은 아니지 않는가.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단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