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만났습니다]한민구 과기한림원장 "과학기술도 '실사구시'…현장 연구자 입장서, 현안 이슈화"

한민구 원장 사진=이동근 기자
한민구 원장 사진=이동근 기자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올해 3윌 취임 직후 과학기술계와 연구자가 느끼는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해결 방안을 만드는데 주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과기한림원이 국내 과학기술계 이슈와 현안에 대해서도 전문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는 각오이자 목표다. 한 원장은 현장 연구자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려고 했다.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정원 감축, 직무발명보상금 조세제도 등 굵직한 현안을 연이어 꺼내든 배경이다.

과기한림원은 과기계 목소리를 한곳으로 모아 전달하는 창구이자 대변인 역할을 했다. 과기계와 연구자가 하나의 현안에 공통 목소리를 내며 정책 변화 당위성을 만들어 냈다.

한 원장은 눈은 여전히 산적한 과제에 쏠려있다. 젊고 우수한 과학자에 대한 연구 지원 확대, 고경력 과학기술 석학의 국가적 활용방안 마련, 어려운 난제에 도전하는 연구문화 정착 등이다.

한 원장은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된 석학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 성과를 보유한 사람들”이라며 “회원들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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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장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났다. 그간 성과와 소회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국내 과학기술계 이슈와 현안에 대해서도 전문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현장 연구자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려고 했다.

첫 번째가 우수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 정원 미달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지방 대학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과기계가 매우 깊이 고민하고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다. 취임 후 해결책으로 시도한 것이 전문연구요원제도 유지·확대, 선발방법 개선 방안에 대한 공론화다. 과기계가 한 목소리로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과를 거뒀다. 우수한 과기 인재 확보와 양성은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 접근이다. 임기 내내 중점적으로 관련 시스템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구실의 성과가 산업과 사회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도 오래된 숙제다. 기술 이전과 창업을 장려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개선 대책으로 기술이전 시 발생하는 직무발명보상금 조세제도를 논의했다. 현 제도가 연구자들로 하여금 발명 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한다면 개선해야 하지 않겠나. 과기계 호응이 컸다.

주목 받았던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도 결국은 위의 두 가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우수 인재를 확보·양성하고, 연구 성과가 산업으로 연결되도록 하면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해결된다.

지난 7개월 동안 회원들을 가까이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과학기술인이 갖고 있는 선의와 국가 발전에 대한 책임감을 체감했다. 회원으로 선출된 분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다. 회원의 전문역량을 더해 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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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현안은 무엇인가.

▲젊고 우수한 과학자에 대한 연구 지원 확대다. 단기적 시야에서 추진하는 연구 대신 중장기 연구 과제를 수행해야 이른바 '홈런'을 치는 세계적 수준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 장기연구 과제의 확산이 필요하다. 동시에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 창업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고경력 과학기술 석학의 국가적 활용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정년을 지난 과학기술 석학은 축적된 연구경험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들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사장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과학자들과 경험·노련미를 바탕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고경력 과학기술인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경력 과학기술인의 '사이언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거나 기업·벤처 기술 자문, 국가 R&D 기획, 선정 및 평가에 활용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현재 해당 주제로 정책연구 중인 만큼 전문지식을 갖춘 고경력 과학기술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각오하고 어려운 난제에 도전하는 연구문화 정착을 위해 과기한림원이 일조하고자 한다. 매년 5만개가 넘는 정부 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 성공해야만 예산 배정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쉬운 연구, 그리고 단기성과 과제에만 집중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자의 연구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도전적인 연구, 인류사회에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과제에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하고자 한다.

-국방부 전문연 정원 축소 계획 관련해 어떤 의견을 전달했나.

▲전문연구요원이 연구개발 분야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주요 이공계 대학,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연구직 및 이공계로 유입되는데 미친 효과가 매우 높다는 의견이 80%를 상회한다.

과기한림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문연구요원 중에서도 '박사과정생의 인원'이다. 전체 대체복무인원 중 박사과정 인원 비율은 3.7% 수준인데 이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이공계 박사과정 진학률이 낮아지는 데는 전문연구요원 선발 불확실성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만약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축소되면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기초과학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다른 나라에서는 최우수 인재가 20대 중반에 이미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 만의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데 우리나라는 입시와 군복무로 인해 3~5년은 늦다. 박사과정생의 대체복무는 과기한림원이 사활을 걸고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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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발명보상 관련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성과 개선대안이 있다면.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에 4조7000억원을 투자해 원천기술과 소재 개발을 촉진한다. 연구개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연구자들의 발명 의욕 고취는 매우 중요하다. 우수한 특허를 생산하고 국가 기술력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직무발명 조세제도 개선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한림원은 현재 직무발명 소득세법 법률개정안으로 크게 2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먼저, 직무발명보상금은 근속 여부와 상관없이 기타소득세로 과세해야 한다. 현재는 소속 연구자들에게 근로소득으로 과세하여 막대한 세금을 내게 함으로써 산업화 지원연구의 장점과 매력을 낮추고 있다. 또 특허권 양도 관련 직무발명 소득세 부과시 비과세한도를 3000만원까지로 상향해야 한다. 현재 전국 직무발명 평균 소득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영세하다. 3000만원까지 상향하여도 세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가치가 높은 탁월한 발명에 대한 의욕을 높일 수 있다.

-일본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 R&D 공백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정부, 민간 R&D의 지향점, 개선점에 대해 말씀해 달라.

▲우리가 가장 크게 고민해봐야 할 것은 정부 R&D 지원을 통한 성과가 민간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지적됐으나 명확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고, 이번 문제에 대한 대책도 특정 분야 혹은 품목에만 국한된다면 다음에 유사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본다.

기초·원천 분야에서는 이미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거나 역량은 있지만 산업현장에 적용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몇몇 분야에 대한 R&D 투자를 늘리는 것보다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이야기한 직무발명보상금 조세제도 개선도 그 일환이 될 수 있고, 그 밖에 규제 개혁도 필요할 것이다. 대학의 연구를 전문기업과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기한림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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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문 공저자 관련한 연구윤리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이 같은 관행, 문제점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논문은 연구 성과의 결집체다. 저자 선정은 가장 기본적 연구윤리다. 연구자가 경쟁 속에 연구성과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간혹 공저자 관련 윤리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나 최근 이런 사례가 생기고 이슈화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 수준 윤리규범을 마련하고 여러 관리 체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연구자가 지식인이자 전문가로서, 또 세금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교신저자와 제1저자 역할에 대해 연구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연구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술지를 내는 학회와 소속기관에서 더욱 세심하게 봐야한다.

과기한림원은 과기계 대표 학술기관으로서 학계의 연구문화가 오도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며 연구윤리에 대해 심층 논의를 시작했다.

-내년 국가 R&D 예산이 24조원을 넘어섰다. 효율성,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항상 따라붙는다. 이에 대한 생각과 효율성 제고 방안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좋은 성과를 내려면 연구자 능력과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평가해서 연구과제를 선정,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심사·평가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평가체계에 있어 전문성보다 공정성을 강조해오다 보니 과제 평가에 있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하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담당분야 PM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전문성을 중심으로 평가위원을 선정한다. 미국은 소수 하이레벨 연구자로 구성한 그림자 패널의 혁신성을 중점 평가하는 방법도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계에서 학문적으로 인격적으로 존경받고 학술적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사람을 PM으로 선정하고 임기 보장 등 파격 대우를 할 필요가 있다. PM을 믿고 맡긴다면 학문 분야별 선정평가 기준 차등화 적용 등 많은 부분에서 혁신이 가능할 것이고, 보다 혁신적이고 우수한 과제를 선정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관리기관 전문성도 강화해야 한다. 성공적 수행을 위해 과제 수행 중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고 사업성과에 대한 사후관리와 후속방안 제시 부문을 강화해서 R&D 전 주기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연구,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선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R&D 예산이 늘어나고 GDP 대비 R&D 예산 비율도 매우 높지만 아직 연구성과가 국민 눈높이에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연구와 분야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며 연구성과가 확산되어 경제발전은 물론 사회적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데스크가만났습니다]한민구 과기한림원장 "과학기술도 '실사구시'…현장 연구자 입장서, 현안 이슈화"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공학도로서 '실사구시' 철학을 핵심 가치로 여긴다. 과학기술이 단순히 기술 측면만 아니라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그의 연구 성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1971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학위를, 1979년 존스홉킨스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뉴욕 주립대학교 버펄로 캠퍼스 조교수로 재직했다. 당시 '비정질실리콘(a-Si) 박막트랜지스터' 및 '비정질실리콘 박막 태양전지' 연구를 시작해 해당 분야에서 1세대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평판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인 TFT(Thin Film Transistor) 연구개발에서 세계적 업적을 축적한 석학이다. 그의 기초연구 및 교육 성과는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분야 세계 1위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2010년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 수상 등으로 연구자로서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서울대 공과대학장, 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대한전기학회장 등 산·학·연·정을 아우르는 이력을 갖고 있다.

지금도 과학기술 석학의 의무는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손에 잡히는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과기한림원 발전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리=최호기자 snoop@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