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도서관도 '놀이터'가 될 수 있죠”

“도서관이 어떻게 놀이터가 됐냐고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도서관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도 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도서관도 '놀이터'가 될 수 있죠”

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2017년 10월부터 최근까지 2년여 간 국회도서관장으로서 했던 말과 행동은 단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변화'다.

국회도서관은 1952년 개관했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근엄' '정숙' '특권'이라는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이 아닌 '높으신 분들'이나 석·박사 같은 이른바 엘리트층만이 이용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허 전 관장은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싶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국가도서관을 만들고자 했다.

허 전 관장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데, 도서관은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의원이나 보좌관, 석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일부 사람만 국회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내 최대 도서관이자 국가중심 도서관으로서 온 국민이 손쉽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국회도서관에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도입이었다. 허 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중심도서관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했다”면서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미디어월'과 지능형 의회정보융합분석시스템 '아르고스(Argos)', AI 기반 챗봇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 빅데이터·클라우드·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을 둔 디지털 서비스를 선보였다.

올해 개관 67주년 기념식에선 '페이퍼리스'도 선보였다. 종이인쇄물을 대신해 미디어월을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으로 국회 안팎 관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허 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도서관은 책만 수북이 쌓인 전통적인 도서관에 머물면 안 된다”면서 “원문 DB 구축 등 소장 자료 디지털화로 편의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확보한 공간을 지식과 휴식 공간으로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기술만 적용한게 아니다. 국회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도 큰 변화를 줬다. '투트랙'으로 변화를 주도한 셈이다. 책을 찾아 읽기만 하던 전통적인 도서관에서 탈피했다. 가상현실(VR)로 역사·문화 콘텐츠를 감상하고 디지털화된 도서 자료 등을 손쉽게 찾아보는 지식놀이터, 문화놀이터로 변화시켰다. 국회도서관 1층 중앙홀 등을 현대 감각의 열린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오픈형 서가와 북카페 등을 설치해 각종 지식·문화콘텐츠를 전시하고 문화·휴식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모바일 열람권 시스템을 구축해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만 설치한다면, 누구나 손 쉽게 국회도서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허 전 관장은 “구글과 네이버 등 대형인터넷포털이 도서관의 지식정보서비스를 잠식하면서 국회도서관이 선구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미래도서관의 표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쉼없이 2년을 달려왔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은 원문 데이터베이스(DB)를 디지털화하는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2018년 18억원에 불과했던 원문 DB 디지털화 예산은 2020년 150억원(안)으로 700% 늘어났다.

허 전 관장은 “원문 DB 디지털화는 도서자료를 스캐닝하는 단순 디지털화가 아니다. AI와 빅데이터에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패키지 형태로의 변환”이라고 설명했다. 허 전 관장은 원문 DB를 서울대 AI 개발에 제공하고자 오세정 총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국회도서관은 서울대와 관련 업무협약(MOU) 논의를 진행 중이다.

2000개도 안되던 국회도서관 이용협력기관도 4000개 돌파했다. 전국 243개 지방 의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의회정보협의회 참여 의회는 100개를 돌파했다.

허 전 관장은 “국회도서관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데 전력을 다 했다”면서 “세종에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각 지역 도서관과 교육청, 의회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찾아갔다”고 회상했다.

허 전 관장은 “4차 산업혁명을 허겁지겁 따라가기만 한다면 더는 성장할 수 없다”면서 “국내가 아닌 세계 도서관계를 통틀어 퍼스트 무버(Fast Mover)가 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1일 국회도서관장직에서 물러났다. 원래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갑으로 돌아가 내년 21대 총선을 준비한다.

허 전 관장은 “변화가 다가올 때 가장 좋은 대처는 수용을 넘어 선도하는 것”이라며 “변화에 끌려가기 보다는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도서관장으로서도 그랬고, 정치인으로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앞장서 기여하고 싶다”면서 “머물지 않고 변화해야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한 사회, 더 정의롭고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