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에게 듣는다]이상한 한성대 총장 "학과 철폐 '트랙 제도', 융합 교육 새 길 열어"

이상한 한성대 총장
이상한 한성대 총장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대학 전공을 선택합니다. 그 전공이 정확하게 본인 적성과 맞는지 탐색할 기간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이 단일 전공만 배워서 평생 잘 살 수 있을까요?”

서울 성북구 한성대 본관에서 만난 이상한 총장은 인터뷰 시작부터 대뜸 질문을 던졌다. 이 총장은 “적성에 맞지 않아도 한 번 들어간 학과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면서 “나 역시 이 질문을 심도 깊게 고민했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 대학 제도에서 학생이 성장하고, 꿈을 펼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2016년 취임 후 이듬해 과감하게 학과에 얽매이는 기존 제도를 없애버렸다. 대신 '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트랙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최소 단위 전공 교육과정이다. 이 총장은 “한성대 학생은 졸업 시까지 두 개 트랙을 필수로 선택해 이수한다”면서 “1학년 때 자신 진로와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 트랙을 경험하고, 2학년부터는 45개 트랙 중 두 개를 골라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한성대 트랙제는 각 트랙 정원 제한이 없다. 학생은 전공 적합성 여부에 따라 학기마다 트랙을 변경할 수 있다.

그는 “단과대별 등 일부 트랙제 방식 전공 선택을 허용한 대학이 있지만 전체 모든 학부를 대상으로 경계 없이 전공 트랙을 선택하게 한 것은 한성대가 최초”라고 말했다. 이 총장으로부터 한성대의 독자적인 트랙제도, 융합교육,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방안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랙제도 도입 시 반발이 크지 않았나.

▲물론 반발은 있었다. 하지만 융합교육을 위해서 학과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구성원을 설득했다. '학과'라는 벽을 허물지 않으면 절대 융합이 될 수 없다. '학생'과 '교수' 모두를 위해 트랙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래학자들은 이제 한 사람이 살면서 예닐곱 차례 직업을 바꾸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실제로 10년 이내 기존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대거 나타날 것이다. 기술은 급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 전공만으로 학생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트랙제도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을 수 있으며 다양한 전공 융합을 통해 학생 잠재력을 키워주는 장점이 있다.

트랙제도를 통해 교수도 변화한다. 교수가 학과에 소속되는 순간 그 과에 안주해 타성에 젖는다. 사실 교수는 학생을 위해 계속 자발적으로 노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트랙제도에서는 교수들이 다양한 트랙을 만들 수 있다. 반면에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트랙은 사라진다.

도입 전에는 국문과, 역사학과 등 학생이 많이 가지 않는 학과가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 때문에 교수들 반발도 컸다.

하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100명 가까운 학생이 기존 국문학과에서 나온 한국어 교육트랙과 문학문화콘텐츠트랙을 선택했다. 교수가 학과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고민하고 강의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등을 배우는 문학문화콘텐츠트랙에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을 접목할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기존 전공이 발전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됐다.

학생 만족도도 높다. 2018학년도 재학생 교육만족도 조사 결과 트랙제를 바탕으로 한 '전공교육' 만족도는 14개 조사 분야 항목 중 2위에 오를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해외에서도 한성대 모델에 관심이 많다. 인도 상공회의소, 중국 지린외대 등 해외에서 한성대 모델을 발표한 뒤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교육부 차관이 트랙제도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상한 한성대 총장
이상한 한성대 총장

-트랙제도 하에서 교수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학생 선택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게 잣대다. 학생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 트랙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들이 학생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트랙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또 고민한다. 사실 교수 입장에서 편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웃음)

무한경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교수는 대학 차원에서 전폭 지원한다. 인공지능(AI), VR 등 첨단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를 배우고자 하는 교수는 외국 연수 등을 적극 지원한다.

AI가 대표적이다. 요즘 AI 전문가를 뽑는 것이 정말 어렵다. 반면에 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 중에서 AI에 관심 있는 교수가 많다. 한성대는 기존 교수 재교육을 통해 AI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또 현재 학교 내에서 AI 전공 교수가 교수들을 대상으로 AI를 가르치고 있다. 한성대는 이처럼 교수끼리 연구 모임이 활발하다. 시대 변화에 맞춰 교수들도 성장하고 발전해야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랙제도의 장점이다.

-최근 융합 교육을 위해 '상상파크'를 개소했다.

▲융합교육을 시키려면 첨단 실험 실습센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상상파크를 지었다. 상상파크는 교내 연구관 지하 2층~지상 1층(3개 층) 400평 규모로 구축되는 창의융합 중심 복합교육공간이다.

학생은 AI, 메이커스페이스, AR, VR 등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전공 학생이 신기술을 자신의 전공과 융합해 공부할 수 있다. 상상파크에서 창의융합교육과정을 통해 첨단 기술 분야 기본교육을 받고, 융합 분야 프로젝트를 통해 첨단 기술 영역과 인문·사회·디자인 등이 융합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한성대는 상상파크를 통해 정보기술(IT) 기반 창의융합교육체계를 구축해 인문, 사회, 디자인, 패션, 예술간 융·복합으로 특성화 분야를 발굴할 계획이다.

그저 시설만 만든 것이 아니다. 선진국 모델을 많이 보고 참조했다. 교수들이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예일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을 찾아가 메이커스페이스 등 IT교육을 배웠다. 독일기업 SAP와 2년 전부터 스마트팩토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지역주민에게도 상상파크를 개방할 예정이다. 초·중·고 학생은 물론 일반인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한성대의 모토는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이다. 지역주민과 사회적 기업도 함께 만들었다. 겨울에는 주민들과 김장도 담근다.

주변 대학과도 상상파크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을 공유할 계획이다. 상상파크를 만들면서 해외 대학 우수 사례를 많이 찾아봤다. 미국은 대학 간에 좋은 메이커스페이스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것을 목격했다. 한성대도 국내 대학과 첨단 시설 운영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AI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은 무엇인가.

▲한성대는 교양과 전공 투 트랙으로 AI교육을 펼치고 있다. 우선 AI전공으로는 IT공과대학 IT융합공학부 산하에 있는 지능시스템트랙에서 AI를 전공 심화과정으로 교육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려는 학생과 교수가 모여 AI 기초와 활용 기술을 배우고 타 분야에 AI를 적용하는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성대 창의융합교육원(C&C 스쿨) 산하에 AI교육연구센터를 운영한다. 여기에 AI 전공 교수 및 학생, AI 기술을 활용하고자 하는 타전공 교수 및 학생이 모여서 위의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관련 인프라는 C&C 스쿨이 지원한다.

한성대 모든 학생이 AI에 대해 배운다. '생활 속의 인공지능'이란 교양과목을 신설, 2학기부터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AI 활용 교육 및 연구 심화를 위해 향후 대학원에서 AI융합전공 등을 신설해 학생뿐만 아니라 기업체 관계자에게 AI응용 및 활용 교육 중심 교육과정을 만들 예정이다.

-한성대 총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인가.

▲한성대는 서울에 위치해 있으면서 학생 모집 등에서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교육혁신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지 못했다.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정원 감축, 재정지원사업 지원제한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성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자는 목표로 학교를 운영했다. 물론 초기에는 내부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결국 교직원이 합심해서 트랙제도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한성대는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됐으며, 2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교육사업 및 산학프로젝트 수주도 크게 증가하는 등 학교가 발전 궤도에 올랐다.

총장으로서 목표는 우리 대학을 '서울소재 중급규모 대학 중 최상급 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과거 한성대는 다른 대학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었다. 이제는 한성대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한성대를 따라오는 대학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외국에서도 한성대 모델을 발표할 때마다 호응을 얻고 있다. 한성대는 진정한 교육 중심, 교육혁신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상한 총장은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부터 사무처장, 대학원장을 두루 거쳤다. 국토해양부 국민주택기금 운용위원회 위원, 국토해양부 장관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주거복지연대 이사장, 한국주거복지포럼 상임대표를 지냈다. 2016년 9대 한성대 총장에 선임됐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