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89>가치 분수령 찾기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레미 고개. 1805년 8월 12일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로키 산맥의 해발 2247m 고개를 넘어 선다. 1803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에서 루이지애나를 매입한다. 미시시피강 서안에서 로키산맥까지 광활한 땅이었다. 제퍼슨은 두 사람에게 대륙 관통 수로를 찾게 한다. 1804년 5월 두 사람은 미주리 강을 따라 상류로 간다. 어딘가엔 서부로 흘러가는 강이 있으리라 믿었다. 레미 고개를 지나 로키 산맥을 넘은 지 두 달, 10월 6일 클리어워터 강을 찾아낸다. 이제 하류로 내려가면 태평양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머서경영컨설팅의 리처드 와이즈는 난제를 하나 안고 있었다. 고객 매출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시장조사를 했지만 전략을 바꿀 만한 결과는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와이즈는 소비자를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개인용컴퓨터(PC)를 생각해 보자. 놀라운 건 지출내역이었다. 컴퓨터 구입에는 2000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 통신장치, 고장수리, 기타 서비스에 그보다 4배나 돈을 들이고 있었다. 자동차도 비슷하다. 유지비용은 자동차 감가상각비의 4배나 됐다. 연료, 보험, 고장수리에 금융비용까지 소비자가 신경 써야 할 건 얼마든지 있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철도운송업에서 차량비용은 총비용의 20분의 1밖에 안 됐다. 그 20배만큼을 시설·노무·회계·재무 비용으로 치르고 있었다.

질문은 간단해졌다. 과연 이런 것까지 고민해야 할까. 성능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혁신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

힐티도 그랬다. 고객들은 주문을 선뜻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장비만 있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란 점이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벽에 구멍을 내는 것이지 전동드릴 그 자체가 아니었다. 더 나은 공구를 더 싸게 파는 대신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공구를 서비스하는 것으로 바뀌면 고객 가치는 분수령을 넘어설 수 있었다. 물론 분수령 넘은 땅은 모두 새로운 기회 공간이 됐다.

요즘 기업을 보면 가치사슬 확장이 유행이다. 업스트림은 다운스트림으로, 다운은 업으로 가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 뚜렷한 기준은 없다. 내가 하는 것보다 위면 업, 그 밑이면 다운이란 식이다. 업스트림은 생산, 미드스트림은 저장·운송, 다운스트림은 유통과 판매란 식이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것은 가치 분수령을 찾는 것이다. 힐티는 장비 대신 서비스가 분수령이 됐다. 잭 웰치는 GE캐피털이 가치의 분수령이라고 봤다. 인튜이트에는 웬만한 고객이 필요하지 않는 복잡한 기능을 빼는 것이 분수령이 됐다. 넷플릭스는 영화관이란 새 공급 채널이 분수령이다. 위로, 아래로가 해결책이 아닌 셈이다.

루이스와 클라크가 넘은 레미 고개는 북미 '대륙분수령' 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부터 강물은 모두 태평양으로 흐르게 돼 있다.

우리는 종종 큰 그림을 망각한다. 내가 선 곳에서 다운스트림과 업스트림을 찾는 것은 답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이 찾아낸 것은 업이나 다운이 아니라 분수령이었다. 내 제품이 매개하는 고객 가치의 분수령을 어딜까. 거기에 마치 대륙분수령을 넘어선 모든 강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새로운 기회 공간이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