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출점 막히자 '변종 편의점'?...자율규약 위반vs신개념 복합매장

서울 강서구 강서로 우장산역 인근에 위치한 CU 우장산역점과 랄라블라 매장. 사진=이주현 기자
서울 강서구 강서로 우장산역 인근에 위치한 CU 우장산역점과 랄라블라 매장. 사진=이주현 기자

“바로 옆에 위치한 GS리테일의 헬스&뷰티숍(H&B) '랄라블라'가 도시락, 삼각김밥, 맥주 등의 판매를 시작한 뒤 매출 타격이 심각합니다. 도시락과 빵 등의 경우 50% 할인 행사를 진행해 관련 상품군 폐기가 매일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어 고민이 큰 상황입니다.”

근접 출점 금지를 골자로 한 '편의점 자율규약' 시행으로 신규 출점이 제한되자 대형 유통업체들이 변종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이들은 가맹사업이 아닌 직영 매장으로 상품 구색을 확대하거나 리뉴얼 후 새로운 형태의 복합매장으로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이를 '변종 편의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이 자율규약을 무력화시키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를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랄라블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식음료 제품들.
랄라블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식음료 제품들.

21일 찾은 서울 강서구 강서로 우장산역 인근에 위치한 CU 우장산역점 같은 건물에는 랄라블라 우장산역점이 위치해 있었다. 두 매장은 간판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랄라블라에는 도시락과 삼각김밥, 햄버거 등은 물론 샐러드와 맥주, 우유, 음료수, 과자, 즉석밥, 냉동식품 등 다양한 식음료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장 한 켠에는 전자레인지도 배치돼 고객들이 직접 제품을 데워 취식할 수도 있다. H&B 전문점이지만 매장 한 켠이 편의점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랄라블라는 우장산역점과 구로디지털점 두 곳에서 이같은 형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CU 우장산역점 점장은 “담배를 제외한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사상품 대부분을 판매하고 있어 매출이 타격이 크다”며 “랄라블라에서 도시락을 구매해 우리 매장에서 취식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CU와 랄라블라는 약 2년 전 유사한 시기에 오픈했다. 과거에는 랄라블라가 화장품 등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해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지난달 매장 레이아웃을 변경하며 식품 상품 구색을 강화하고 식품 매대를 매장 출입구로 전진배치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랄라블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선식품 매대. 사진=이주현 기자
랄라블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선식품 매대. 사진=이주현 기자

랄라블라 측은 “기존 운영하고 있던 매장을 상권 분석에 따라 상품 구색을 강화하고 매대 진열 방식을 변경한 것”이라며 “상품 구성 비율도 과거 5%(식품) 대 95%(뷰티)에서 10% 대 90% 수준으로 변경된 것이고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으로 근접출점과 변종 매장 논란 등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롯데슈퍼의 즉석식품 판매점 '델리카페'도 유사한 지적을 받고 있다. 롯데슈퍼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과 대치동에 각각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과 '델리카페 대치2점'을 운영하고 있다. 두 매장 역시 2차선 도로 맞은편 CU 매장을 두고 있으며 인근에는 GS25 매장이 위치해 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길 건너편에는 CU 매장이 위치해 있다. 사진=이주현 기자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길 건너편에는 CU 매장이 위치해 있다. 사진=이주현 기자

롯데슈퍼 델리카페도 랄라블라와 동일한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품 구색 역시 도시락, 삼각김밥, 간편식, 군고구마, 각종 안주류 등이 있어 편의점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신규 매장이 아닌 기존 영업하던 롯데슈퍼를 리뉴얼한 특화 매장으로 판매하는 상품도 기존 판매 제품과 동일하다”며 “업태 역시 편의점과 다른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변종 매장 지적은 억측”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편의점 점주들은 이들 매장이 현재 편의점 가맹본부 혹은 가맹본부의 계열사라는 점에서 여러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반발했다. 근접출점 혹은 상품 구색 변경 등을 통해 이같은 매장이 계속해서 생겨날 경우 편의점 자율규약을 무력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영세 편의점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가맹사업을 하는 유통업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를 저버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점주는 “이들 매장과 유사한 형태의 이마트 노브랜드 전문점 출점으로 인해 편의점 이마트24의 폐점 사례가 늘고 있어 소송도 진행되고 있다”며 “자율규약이 있지만 현행법의 맹점을 교모히 이용한 변종 매장의 꼼수 출점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SM과 H&B 매장들의 이같은 출점과 매장 변경이 계속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하지만 최근 유통업계가 성장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입장도 있다. 시장이 포화된 가운데 다양한 소비자 취향과 소비심리를 공략하기 위한 테스트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업계가 각종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이를 한 업태에만 맞춰 근접출점, 변종 매장 등으로 몰고 가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사진=이주현 기자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롯데슈퍼999 델리카페점 모습. 사진=이주현 기자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