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8K화질 논쟁, 멀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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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준의 어퍼컷]8K화질 논쟁, 멀리 보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화질을 놓고 제대로 맞붙었다. 무대는 '8K'다. 8K는 현존하는 최고의 화질이다. 화소가 가로 7680개, 세로 4320개에 달한다. 4K(3480x2160)에 비하면 4배, 2K(1920x1080)보다 16배나 더 선명하다. '진짜' 8K화질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잽을 주고받던 탐색전에서 강펀치가 오가는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화질을 단순 비교하는 수준에서 광고로 대놓고 자존심을 긁더니, 급기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됐다. 사건은 공정위 표현대로 '중대성'을 감안해 서울사무소에서 본부로 이첩됐다고 한다.

시장을 놓고 세계 1, 2위 기업의 주도권 다툼은 자연스런 행보다. 기술도 경쟁해야 진화하는 법이다. '최고'라는 자존심에 생채기가 낫다면 당연히 시비를 가려야 한다. 사안이 엄중하면 물불을 가려서는 안 된다. 그래도 전제 조건이 있다. 다투는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기업이니 실리도 빼 놓을 수 없다. 모두가 만신창이로 끝나면 부질없는 싸움이다. 무엇보다 시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가 이해 못하는 논쟁이라면 단추가 한참 잘 못 끼워진 것이다.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이야기다.

우문이다. 과연 '8K시대'일까. 8K영상을 위해서는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디스플레이, 네트워크, 콘텐츠다. 당연히 8K TV와 8K급 콘텐츠는 필요조건이다. 충분한 대역폭도 빼놓을 수 없다. 8K영상을 압축하고 풀어주는 인코더·디코더와 같은 코덱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모두 표준화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만 간신히 턱걸이했다. 이제 막 8K TV가 나온 게 전부다. 8K영상 관련해서는 송출하는 국가도 없을 뿐더러 제작하는 곳도 드물다. 물론 4K를 8K급으로 업스케일링하는 기술이 있다. 하지만 8K처럼 보이기 위해 가상 화소를 만들 뿐이다. 본질은 4K이어서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장이 커진다면 명분은 있다. 선점 효과 때문이다. TV시장 예상치는 크기(인치)별로 달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이미 성숙기를 지났다. IHS마킷에 따르면 2011년 2억4860만대로 꼭지를 찍은 이 후 줄곧 내리막이다. 2013년 2억2730만대, 2015년 2억2260만대, 지난해 2억2130만대에 이어 올해 2억2035만대로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TV교체 주기가 점점 길어진 것이다. '7년 교체론'은 옛말이다. 8K 전망은 더 예측 불허다. 올해 3분기 8K TV 판매는 2만7300대로 2분기 3만2500대보다 16% 줄었다. 2017년 4분기 출시한 이 후에 처음이다. 점유율도 전체의 0.05%선에 불과했다. 시장 초기이어서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소비자와 시장의 변화다. TV시청은 줄고 모바일 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다. 변방으로 무시했던 중국도 무섭게 쫓아왔다. 동영상 온라인 서비스(OTT)도 큰 변화의 축이다. 2007년 출시한 '애플TV'가 대표적이다. 2017년 판매량이 2500만대였고 이듬해 3500만대로 1년 만에 50% 가까이 커졌다. 성숙기에 진입한 TV와 대비된다. OTT는 TV와 다른 시장이라고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TV 선택기준이 변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화질이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 바뀐 시장에서 삼성과 LG가 더 이상 맞수일 수 없다. 진짜 경쟁상대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나이키의 상대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말은 여전히 살아있는 불문율이다. 화질 논란도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보인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