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가 즐기는 인터넷·게임을 질병 유발물이라니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인터넷과 게임을 중독유발 대상으로 분류해 관리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 파문이 예상된다. 통계청이 분류하는 질병코드에 인터넷과 게임을 포함하는 움직임이 포착됐고, 여기에는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도 간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관련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를 주축으로 한 정부 부처와 의료계 등이 중독 예방관리 국가 종합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터넷과 게임을 질병코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이미 시행 중인 셧다운제나 법제화가 진행중인 중독관리 기금 조성 등을 뛰어넘어 아예 인터넷·게임을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질병으로 규정하는 관점이어서 사회적 파문이 예상된다.

질병코드란 통계청이 질병을 분류하고 복지부가 관리하는 표준체계다. 복지부는 이 표준체계에 맞춰 질병을 관리하고 관련 제도를 만든다. 문제는 인터넷과 게임을 질병코드에 포함해 중점 관리 대상에 놓은 점이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4대 중독법에 힘을 싣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4대 중독법안은 게임과 인터넷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같은 선상에서 중점 관리하는 것이 뼈대다.

인터넷과 게임을 4대 중독에 포함하게 되면 정부가 창조경제 핵심으로 내세운 게임과 인터넷 미디어 산업 생태계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더불어 게임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민 대다수가 중독 관리 대상에 놓이게 된다.

업계와 학계는 인터넷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움직임에 사실상 패닉상태에 빠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이용자를 잠재적 중독대상자로 분류해 관리하는 것은 전체주의사회에서나 통용될 법한 일”이라며 “우리가 즐기는 영화나 음악, 만화, 음식을 과소비한다고 해서 정부가 중독이란 틀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가톨릭의대를 중심으로 한 중독포럼이 지난 8월 29일 중독 예방관리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보건복지부 과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가 축사를 했다. 이날 포럼에서 윤명숙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터넷 게임중독을 포함한 도박, 알코올, 중독관리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4대 중독법 제정에 힘을 실었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교수는 “인터넷과 게임 중독을 행위 중독의 하나로 분류하고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독포럼은 지난해 7월 가톨릭의대 김대진 교수와 이해국 교수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다. 이 교수는 지난 정부 때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인터넷게임의 질병코드 분류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게임·인터넷업계는 이 같은 움직임에 충격과 함께 크게 위축된 분위기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그간 게임산업에 종사하면서 셧다운제와 불편한 사회적 시선에 시달려 왔다”며 “게임을 창조경제의 하나로 내건 이번 정부에서는 이런 일이 재연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게임과 인터넷을 중독 유발 요인으로 규정해 관리하게 되면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정해상 단국대 법대 교수는 “게임과 인터넷을 마약이나 알코올과 같은 선상에서 중독 취급하는 나라는 어느 곳에도 없다”며 “자칫 게임과 인터넷을 질병코드에 포함시킨다면 정부와 국민이 감당할 사회적 비용 역시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며 공청회도 더 열 계획이지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