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대·중소기업 상생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였다면, 세계적인 성공신화를 이룬 ‘구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합리적인 기업 풍토와 제값받기 문화가 조성돼 있지 않고,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생관계를 이뤄 동반성장을 모색하는 한편, 재무 건전성과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중소기업 자체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됐다.

전자신문사가 주최하는 국내 정보통신 분야 산·학·관·연 전문가 모임인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성균관대 교수)은 지난달 28일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라는 주제로 3월 정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날 모임은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자, 대안 마련이 절실한 사안이었던 만큼 50명이 넘게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정부 정책과 함께 중소기업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기업 경쟁력은 경쟁에서 생긴다=특히 최일선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및 정보통신 전략을 지휘한 변재일 의원(전 정통부 차관)이 참석, 중소기업의 실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변 의원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일자리창출, 균형발전과 같은 사회적인 목적상 시장경제에 반대되는 정책들이 일삼아지곤 하지만, 중소기업 의견이 최대한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며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가능성있는 중견기업 육성에, 그리고 시장이 창출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도 무조건적인 정부 지원은 오히려 기업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데 공감했다. 패널로 참석한 오병기 넥서브 사장은 “정부는 ‘선택과 집중’ 전략아래 소수정예 기업을 지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으며, 김병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도 “기업 경쟁력은 보호나 규제가 아니라, 철저한 경쟁을 통해 생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부위원장은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폐지된 단체수의계약제를 보완, 재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오종우 한국GIS산업협회 부회장의 의견에 “단체수의계약은 일부 기업들의 로비와 나눠먹기식으로 이뤄진 만큼 기업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고 지론을 펼쳤다.

◇제값문화 절실=여기에 덧붙여 이상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소프트웨어공학센터 소장은 “중소기업을 일부러 도와주기보다는 제값을 쳐주는 문화만 정착된다면 대·중소기업 상생은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구매수량에 따라 가격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이상적일 텐데, 실제로는 대기업은 비싸도 팔리지만 중소기업은 가격을 싸게 해도 팔리지 않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에 대해 장세탁 어플리씨스코리아 고문도 “시선을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무대로 옮겨야 한다”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하루빨리 경쟁력을 갖춰 글로벌 무대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도 문제=대·중소기업 상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구글과 같은 기업이 국내에서 성공할 만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손대일 유비테크놀로지스 사장의 질문에 김병배 공정위 부위원장은 “휴맥스가 그나마 성공한 중소기업으로 꼽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라며 대기업의 상호출자에 원인을 돌렸다. 김 부위원장은 “대기업이 상호출자를 하면서 기존 중소기업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계열사를 앉히고 있다”며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종우 한국GIS산업협회 부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매수인, 하수인의 관계로 고착돼 있다”며 “우리나라 고유의 사대사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IT산업 외에 타 산업의 성공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영희 현대정보기술 사장은 2년 전 정보통신부 정부통합전산센터추진단장을 맡으며 광주2센터 공사를 발주했던 경험을 살려 “건설업은 대·중소기업간 상생, 중소기업간 건전한 경쟁관계가 구축돼 있다”며 “건설업을 노가다로만 보지 말고 교훈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재구 QMB컨설팅 사장도 회사가 위치한 광장구 포목시장을 예로 들며 “100년 전통의 포목시장 거래문화에서도 배울 것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제목: IT경제에서 경쟁정책의 과제

연사: 김병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 윈도 운용체계(OS)에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탑재, 판매하면서 웹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다. 넷스케이프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와 별도로 MS는 윈도에 윈도미디어플레이어(WMP)를 끼워팔아 불공정거래 판결을 받았다. OS와 WMP를 단일 제품으로 봐야 할런지, 별도 제품으로 봐야 할런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다운로드 미디어플레이어와 스트리밍 미디어플레이어를 단일 시장으로 몰지 별개 시장으로 봐야 할런지도 숙제다. 이것들이 국내시장의 문제일까, 세계시장의 문제일까.

이것은 IT경제(신경제)가 갖고 있는 경쟁정책 과제의 일면이다. IT경제가 갖는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경쟁당국이 조기에 개입해야 하고, IT분야 독과점 폐해와 소비자 효율 증대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워 계량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만큼 경쟁법 집행이 복잡화되고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기술·제품·산업 융합·제품 외연 확장으로 관련 제품 시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중규제가 되거나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 대두될 수도 있다.

이런 IT경제에서는 경쟁당국과 전문규제당국간 관계를 명확히 하면서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은 분리하고, 특히 경쟁제한 속성이 있는 산업정책은 최소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사전규제와 사후규제 역시 분리를 원칙으로 하되, 진입장벽을 두는 사전규제도 폐지돼야 한다. 이외 망 접근·접속료·번호이동성·주파수 등 생산자간 규제사항도 최소화하고, 가격·상품·서비스·유통경로·점유율 등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간 접점에서 발생하는 규제들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책 담당 기구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피규제자의 권리구제장치 등 적법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제목: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

발표: 연세대 이봉규 교수

지난해 1·2·3분기 IT부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390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비IT부문은 300억달러 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IT부문과 비IT부문간 무역수지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IT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대기업 위주로 편중돼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양극화는 궁극적으로 전체 IT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더욱이 WTO, FTA 등 다자주의 및 지역주의가 확산되면 중소기업이 받는 타격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인력경쟁력 확보(e러닝 교육시스템 개발) △기술경쟁력 확보(대·중소기업간 기술 공유 우대제도 시행) △마케팅경쟁력 확보(IT 상생 협력 박람회 개최) △재무경쟁력 확보(펀드 구성 지원) △수익경쟁력 확보(직거래를 통한 수익성 개선) △중소기업 근무조건 개선(대·중소기업간 노조 공동 워크숍 시행) △상생 협력 공감대 확산 등 다양한 상생 모델이 개발, 운영돼야 한다.

델, IBM 등 세계적인 IT기업 연구소를 유치한 아일랜드가 강력한 이민정책으로 우수인력을 영입, 제품 개발 한 달만에 각국 현지어 버전을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한 번 새겨볼 만 하다.

주제: 100개중 하나만 키워야

발표: 오병기 넥서브 대표

대만·일본 등지에는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이 SK텔레콤·삼성SDS·현대정보기술 등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자체 경쟁력이 없다. 대외 신뢰도와 브랜드가 떨어지고 대형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없어 대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최종 소비자에 돌아간다. 대기업 프리미엄으로 2∼3배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분배’ 위주의 기업 육성정책 및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국가 정책의 상당 부분이 성장과 집중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쟁력있는 회사 몇 개보다는 몇 백만개의 중소기업을 원한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내실이지, 숫자가 아니다. 몇 십만개, 몇 백만개 중소기업 대신 ‘똑똑한’ 몇 만개면 충분하다. 철저한 스파르타식 경쟁환경을 조성하고, 여기서 살아남는 중소기업 위주로 육성돼야 한다. 그래야만이 중소기업 스스로 재무안전성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독점 경쟁업체가 될 수 있다. 결국 중소기업 스스로가 재무건전성과 기술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제목: 중소기업과 동반 해외진출

발표: 이영희 현대정보기술 사장

과거와 달리 IT서비스업이 기피업종으로 전락했다. 채산성이 떨어지고,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도 어렵다. 근무환경도 열악해져 우수인력이 떠나는 상황이다.

모든 악조건의 시발점은 과잉경쟁, 저가수주다. 제값을 주고, 적정 분배를 통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설업와 같이 대·중소기업간 협업, 공생문화가 잘 구축돼 있는 다른 산업분야도 성공사례로 배울 필요가 있다.

현대정보기술은 상생전략의 일환으로 중소기업과의 동반 해외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이 ‘소프트웨어(SW) 종합상사’가 되어 국내 패키지 SW 및 솔루션 업체와 함께 해외에 진출하는 것으로 1차로 7월까지 5개 회사와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최근 SW 분리발주가 시작된데 대해 대기업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성공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소기업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역할분담과 품질경쟁력 향상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존재한다. 대기업이 앞장서 이 수레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