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SW산업 죽였다... 정부 SW정책은 되레 역주행

전자정부 UN평가 1위 불구 수출 `0`

 #2001년 주가 100만원을 돌파하며 ‘코스닥 황제주’로 불리던 핸디소프트는 올해 2월 상장폐지됐다. 해외까지 진출하며 기세를 올리던 이 회사가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소프트웨어(SW) 구매 정책 때문이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07년 정보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시·군·구 행정통합시스템 ‘온나라시스템’을 직접 만들었다. 공공기관용 그룹웨어가 대표 상품이던 핸디소프트는 하루아침에 추락했다.

 

 #지난 3월 국토해양부는 국가공간정보통합체계 4차 구축사업에서 3년간 진행한 SW 분리발주를 포기했다.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연계(EAI) 솔루션과 동기화 솔루션을 시스템통합(SI) 개발 사업에 통합 발주했다. 비용절감 요인이 컸다. 4대 강 토건사업에는 수십조원이 투입됐지만 정부 예산절감은 얼마 안 되는 정보화 부문이 타깃이 됐다. 솔루션을 개발해온 중소기업들은 결국 대기업 SI업체 하도급업체로 전락했다.

 

 구글의 모토로라모빌리티 인수를 계기로 정부의 SW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UN 전자정부 평가 세계 1위를 달성하고도 세계 500대 SW기업 명단에 한국 기업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엇박자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SW뉴딜’ ‘월드 베스트 소프트웨어 육성’ 등 구호만 요란했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자 정부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정부의 SW 육성책은 예산절감 논리의 벽에 부딪히면서 역주행을 거듭했다. 행안부 ‘온나라시스템’과 국토부 ‘국가공간정보시스템’ 등 대규모 국가정보화 프로젝트에 중소기업이 개발한 SW 대신 정부가 SI업체를 앞세워 직접 개발하면서 중소업체는 벼랑으로 내몰렸다.

 행안부는 지난 2008년부터 지자체 정보시스템 가운데 우수사례를 뽑아 전국 지자체에 그대로 뿌려주는 사업까지 펼쳐왔다. 중복 개발을 통한 예산낭비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정부에 귀속시키는 정책까지 구사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그랬다.

 중소 SW기업 한 사장은 “지자체와 공동 기획해 개발한 시스템이 중앙정부 우수사례로 뽑혀 전국 확산사업에 나서면 개발기업은 좋은 호재여야 하지만 전국 확산 사업 때는 삼성·LG·SK 등 대기업 SI업체가 주사업자로 선정되고 중소업체는 하도급업자로 전락하는 게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SW 구매 대신 직접 개발로 전환하면서 SW 수출 경쟁력도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핸디소프트의 그룹웨어나 업무프로세서관리(BPM) 솔루션은 한때 수출 유망상품으로 떠올랐지만 내수시장이 사라지면서 연구개발 동력이 사라졌다. 정부가 개발한 온나라시스템은 한국 행정 특성에 최적화돼 일반 패키지 SW처럼 다른 국가에 판매되지 않는 함정에 빠졌다.

 박환수 한국SW산업협회 정책실장은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1위를 차지했는데도 불구하고 SW 수출 실적이 거의 전무한 것은 수출이 가능한 패키지 제품 육성을 포기하고, 특정 고객만 사용할 수 있는 SI 사업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보신주의도 국산 SW 판로를 가로막고 있다. 국산 신제품을 구매했다가 시스템 장애 등의 문제로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단 검증받은 외산을 구매하자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정부가 시장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진흥정책 기조를 바꿨지만 결국 시장만 잃는 셈이 됐다.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10곳 가운데 9곳이 홈페이지 데이터베이스관리솔루션(DBMS)으로 외산 오라클을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NHN 등 민간기업이 국산 DBMS를 잇따라 도입한 것과 대비됐다.

 조남재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발주를 하는 공무원들이 기술적 사안에 소신을 펼 수 없는 풍토도 문제”라면서 “외산 종속 심화로 국내 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향후 정보시스템 구매와 운용이 외부 요인에 휘둘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식경제부가 추진한 SW뉴딜·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 프로젝트 등이 예산편성 과정에서 잇따라 축소되자 ‘SW 홀대론’도 만연하다. SW업체 한 임원은 “MB정부는 출범 초기 SW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결국 효율 논리를 내세워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을 정보통신산업진흥원으로 통폐합했다”며 “최근 SW육성책이 비판을 받자 다시 SW국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데, 이미 떨어진 정책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단기적인 예산절감 논리보다 미래 대한민국 경쟁력을 염두에 둔 범정부 차원의 발상전환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