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생태계 식민지` 시작됐다 <상>애플 · 구글 리스크 공화국

新 식민지 IT 생태계에 국내 기업들 결국..

애플과 구글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 산업계는 감기 몸살을 앓는다. 한국 산업계의 애플·구글 종속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바뀐 앱스토어 정책 때문에 국내 기업 매출이 급감하고 사업을 접는 사례도 나온다. 우려했던 `생태계 식민지`가 본격화됐다. 구글·애플 리스크에 신음하는 한국 산업계의 현실과 대안을 3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국내 휴대폰 결제업체들은 지난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애플이 앱스토어에 등록한 앱에서 휴대폰 결제 기능을 없앴기 때문이다. 애플이 변경된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앱을 삭제하겠다고 통보하자 국내 개발사들은 일제히 휴대폰 결제기능을 없애 버렸다. 애플은 대신 신용카드 결제만 허용해 결제액 30%를 고스란히 수수료로 가져가고 있다. 결제업체들의 매출은 그만큼 곤두박질쳤다.

신성장동력으로 지난해 스마트패드 사업 진출을 선언했던 중견 전자업체 A사는 1년여 만에 계획을 백지화했다. 구글이 `구글 마켓 서비스(GSM)`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아 안드로이드 마켓 연동이 사실상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GSM 라인선스를 받은 업체는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규모를 갖춘 기업 5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방`과 `무료`라는 구글 정책에 현혹돼 이 사업을 준비했던 중소기업들이 `구글 인증`이라는 `유리 벽`에 좌절했다.

세계 `모바일 생태계`를 양분한 애플과 구글의 일거수일투족에 우리 IT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 확산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종속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3000만 가입자를 돌파한 국내 최대 무료메시지 서비스 카카오톡은 두 달째 소프트웨어(SW) 업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강화하면서 △전화번호로 회원 가입하고 △자동으로 친구를 등록하는 기능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업데이트 지연으로 버그 수정이 힘들어지자 아예 버그 수정을 위한 추가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애플이 문제삼은 전화번호 친구 자동 등록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면 카카오톡은 핵심 기능이 사라져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다.

애플이 지난해 자체 `인앱 결제시스템`만 쓰도록 강제한 것도 개발사 매출에 큰 타격을 줬다. 애플 인앱 결제시스템은 앱 속에서 추가로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할 때마다 애플이 구매액 30%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것이다. 수수료 요율이 30%로 높은데다 신용카드 결제만 허용해 앱 개발사는 물론이고 결제업체도 타격을 입었다. 구글도 지난해 안드로이드 마켓에 수수료 30%의 `인앱 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양쪽 마켓에서 각각 30%씩 수수료를 떼면서 개발사 매출이 급감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 앱스토어 매출은 12조원(101억327만달러)가량이다. 이 가운데 30%인 4조원을 애플이 수수료 매출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조사기관 디스티모 조사에서 한국이 국가별 앱스토어 다운로드 순위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이 애플 수수료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과 구글 횡포에도 국내 기업은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자칫 이들에 찍히면 마켓에서 쫓겨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앱 개발사 한 임원은 “디지털 아이템 운영이나 판매는 앱스토어 서버가 아닌 개발사가 자체 투자한 서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애플과는 전혀 상관없는 비즈니스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아이템을 팔 때마다 30%씩 애플이 수수료를 챙겨기는 것은 마치 조직 폭력배가 전통시장에서 영세한 상인을 상대로 불법 자릿세를 받는 것과 똑같다”고 토로했다.

앱스토어용 앱을 개발 중인 한 개발자는 “개발자 사이에서는 애플이 제시한 `앱스토어 리뷰 가이드라인`은 법보다 앞선다”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모바일 생태계가 종속되면서 대기업이나 소비자 피해도 불거진다.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앱이나 디지털 콘텐츠가 거래되면서 통신사 콘텐츠 판매 매출은 급감했다. 그동안 통신사가 보유했던 소비자 구매 데이터 등이 구글이나 애플로 넘어가면서 고객관계관리(CRM)도 차질을 빚고 있다. 안드로이드 종속으로 인해 삼성전자·LG전자 등은 향후 구글이 OS를 유료화한다면 천문학적인 사용료를 물어낼 수밖에 없다. 스마트TV나 스마트 셋톱박스 개발에도 어쩔 수 없이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비자는 지난해 앱스토어에서 휴대폰 결제가 차단되면서 번거로운 카드 결제만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카드가 없는 학생들은 아예 아이템 구매 자체가 원천 봉쇄됐다.

중소업체 한 사장은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가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을 띄워주면서 모바일 생태계 식민지를 자초했다”며 “여기에 글로벌 기업의 횡포를 견제할 정부 감시 시스템도 전무해 애플과 구글의 독점적 지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고 꼬집었다.

장지영·한세희·황태호기자 jyajang@etnews.com

〃 애플·구글 정책과 국내 피해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