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가 올해로 탄생 25주년을 맞았다.
최초 개발 업체인 미국 인텔 자신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25년이 흐른 지금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는 핵심 기술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산업과 생활 현장 곳곳에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관련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의 쓰임새가 광범위해졌고 그 기능과 역할 또한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25년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 발전보다 앞으로 25년의 기술 발전이 훨씬 빠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디지털 혁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인터넷 시대에 맞춰 새로운 통신 기기에 대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적용으로 다시 한 번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생활 혁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처음 등장할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의 최근 회고담에서 밝혀졌다.
그도 그럴만했던 것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처음부터 지금처럼 PC의 두뇌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신생 업체인 인텔이 한 기업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생존 노력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인텔에 의해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71년 11월 15일.
그러나 그 출발점은 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설립된지 1년이 채 안된 인텔은 일본의 계산기 제조업체인 비지콤에 반도체를 납품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자로 인텔의 테드 호프 부사장의 회고담. 『비지콤을 방문해 일본 기술자들의 어깨 너머로 그들이 작업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회로 설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산기 기능을 할 수 있는 보다 단순한 칩을 만들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그러나 호프가 설계한 칩은 비지콤에 의해 보기 좋게 거절됐고 인텔 내부에서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모태가 되는 이 제품을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렸다.
호프와 그의 팀은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개선 작업을 거듭하는 한편, 회사 관계자들을 설득, 71년 마침내 트랜지스터 2천3백개를 집적시켜 만든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004를 세상에 공개했다.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 회장은 최근 이와관련, 『사실 발표 당시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PC 산업을 일으킬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70년대를 거치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기게식 제어장치나 주문형 회로를 대체하면서 기술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모토롤러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도 6800과 TMS1000이란 제품을 각각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잡은 것은 70년대 후반.
이 때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성능이 초기 제품에 비해 수백배 증가한데다 애플컴퓨터, 아타리, 커모도 등의 잇단 PC 발표에 힘입어 변혁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반한 디지털 혁명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어 회장은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PC 시장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81년 IBM이 자사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실리콘 밸리의 소규모 벤처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채용한 PC를 발표한 이후 이 시장의 잠재력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의 지적은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IBM이 당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칩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리를 사들이지 않은 것이 『IBM 역사상 유일, 최대의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IBM 호환기종이 생겨난 이후인 85년, 인텔의 매출액은 12억달러로 급성장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PC 소프트웨어의 지배적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칩 제작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드는 업체도 속속 생겨났다.
이후 10년간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이 중형컴퓨터의 성능을 능가하고 대형컴퓨터와 경쟁하는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컴퓨터 산업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시기로 기록된다.
다운사이징으로 표현되는 PC 네트워크 환경이 중앙처리형 컴퓨터를 몰아내고 중대형 컴퓨터에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채용으로 가능했던 PC산업의 규모는 현재 3천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뿐만 아니라 가전, 통신, 자동차 등 다른 분야산업에서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되면서 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케이블 텔레비전의 디코더, VCR, 항공기, 인공위성, 심지어는 미사일 등 첨단 무기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되면서 인간 생활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없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마저 낳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금보다 앞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며 성능 향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25년간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연간 50%의 성능 향상을 이루어 왔다. 그 결과 현재 최고 수준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은 4004에 비해 2만배에 달한다.
기술 진보를 표현하는 집적도에서도 4004는 2천3백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데 비해 요즘의 펜티엄프로는 5백50만개에 달한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오는 2006년엔 최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경우 트랜지스터 집적수는 3억∼4억개가 되며 크기도 작아져 원자 수준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실시간 비디오 전송이나 네트워크상에서의 동시 통역 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따라서 시간 문제라고 이들은 말한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