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체신부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김정길의원은 행정전산망사업과 관련,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컴퓨터가 미국시장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다음 "행정전산망용 주컴퓨터 도입기종은 청와대에서 결정해 내려온게 아니냐"며 주전산기의 도입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청와대의 홍성원 경제비서관과 데이타통신의 전 사장 이용태씨, 전 전무 황규복씨를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건의했다.
이 사실은 일부 신문에 "행정전산망 도입권력 개입 의혹"등의 제목으로 보도되어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도입에 모종의 흑막이 있는 것처럼 비쳐졌고 그후 5공 비리를 다루는 청문회에서는 5공비리의 하나로 보려는 시각도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그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80년대초에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솟아나 뉴웨이브 제품을 개발한 모험기업들은 엘엑시(El.si), 엔마스(Enmasse), 앙코어(Encore), 시콰이어(Sequoia), 톨러런트(Tolerant), 밸런스(Balance) 등 하나같이 괴상한 이름의 회사였다. 그들 회사는 인텔 등이 생산한 칩에 AT&T로부터 싼값에 산유닉스(Uni.)를 개량한 운용체계를 집어넣어 만든 중형컴퓨터로 단판승부를 내려는 도깨비 회사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회사제품은 기술도입조건이 좋다는 이유 때문에 한국과 같이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후진국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행정전산망용 컴퓨터의 국내 원칙은 섰으나 외국이 기술 도입이 없이순수한 국내 기술만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그 가능성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너무 걸려 행정전산망사업을 제 때에 추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행정전산망사업추진 전담기관인 데이콤은 "주전산기는 외국 기종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되 궁극적으로는 국산화를 목표로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도입기종의 선정작업에 나섰다. 그러니까 1백% 기술 전수를 해준다는 조건하에 외국기종을 도입하여 일부는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조립생산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기종 선정의 대상이 되는 외국의 컴퓨터회사는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눌 수 있었다. IBM이나 데크(DEC), 유니시스(Unisys)같은 거대 기업이 1등급을 이루고 있었고, 프라임(Prime)이나 탠덤(Tandem)등이 2등급을, 그리고 뉴웨이브제품을 생산하는 모험기업들이 3등급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IBM 등 일류 회사들은 기술 이전을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탠덤 등 이류 회사는 기술이전을 할 의사를 보였으나, 그들이 주려는 기술이 최신 모델의 첨단기술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구형기술이거나 아니면 그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뉴웨이브 제품을 생산하는 삼류 회사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그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모험기업이라는 점이었다.
데이콤이 행정전산망용 컴퓨터의 국산화를 위한 기종 선정작업을 시작한 것은 84년 10월이었는데, 처음에는 오라겐(Auragen), 시콰이어, 엘엑시 등 3개회사의 기종을 검토했다. 이듬해 2월에는 엔마스가 유리한 기술이전 조건을 제시해옴에 따라 엔마스 기종이 새로운 검토 대상으로 떠올랐다.
85년 4월에열린 데이콤과 체신부의 컴퓨터 국산화 관련 회의에서는 엔마스기종과 엘엑시 기종이 중점적으로 검토 되었는데, 대체로 엔마스 기종으로 쏠리는 분위기 였다. 행정전산망용 컴퓨터는 데이터베이스(DB)성능이 좋아야하는데 그점에 있어 엔마스 기종은 매우 유망한 기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종 선정작업에 전자통신연구소가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연구소측에서는 R&D 측면에서의 이점을 내세워 앙코어 기종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기종은 DB나 DP기능이 미약해 행정전산망사업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데이콤측에서는 엔마스 기종을, 연구소측에서는 앙코어기종을 내세워 팽팽히 맞섰다.
86년 2월에는 새로운 모험기업인 톨러런트(Tolerant)의 제품이 강력히 대두됐는데, 그 이유는 그 회사의 기술과 도입 조건이 다른 회사에 비해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톨러런트는 그 당시 설립된지 2~3년밖에 안된 신설 회사로서 32비트 칩의 멀티프로세서를 채택한 시스템으로 시장 석권을 노리는 모험기업이었다.
엔마스냐 앙코어냐 하는 판국에 톨러런트 기종까지 끼어들어 혼전을 벌이다보니 기종 선정작업은 자꾸만 늦어져 86년도 저물어갔다. 기종 선정작업으로 2년 이상을 허송 세월한 셈이었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결론도 없이 그 해를 넘기면 컴퓨터의 국산화는 고사하고 행정전산망사업 자체가 유야무야되고 말것이라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때 결정권자인 데이콤의 이漣태 사장은 몸이 불편해 설악산 콘도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 기종 선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급박한 과제라고 느낀 그는 분쟁 당사자인 데이콤과 전자통신연구소의 대변자를 한 사람씩 설악산콘도로 불렀다. 데이콤의 대표로는 정보통신연 구소장 백인섭이, 연구소측의 대표로는 KAIST의 전길남교수가 불려갔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길남은 전자기술연구소에서 이용태 밑의 부책임자로 근무할 때부터 과학자로서의 탁월한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연구원들의 신망이 두터웠고, 때문에 이용태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곧잘 그의 자문을 받았다.
이용태는 두 사람을 마주앉혀 놓고 각각의 입장을 주장케 했다. 두 사람간의 논쟁이 과열되면 중단시켜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식으로 해서 하루종일 논쟁을 시켜가면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기종을 놓고 순위를 매기게 했는데, 그 결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데이콤측은 엔마스기종을 1위로, 앙코어 기종을 3위로 내세운 반면 연구소측은 앙코어 기종을 1위로, 엔마스 기종을 3위로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톨러런트 기종은 양쪽에서 2위로 평가받았는데 그것이 결국 톨러런트 기종이 선정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나서 심사숙고를 거듭하던 이용태사장은 서울로 올라와 톨러런트 기종으로 결정을 내렸다.
"두 기종의 장단점에 대해 양쪽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각각 엔마스와 앙코어 기종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주장을 했지만 톨러런트기종에 대해서는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어요. 그래서 톨러런트를 택했던 거죠"
그렇다면 톨러런트 제품은 어부지리로 운이 좋아 채택되었던 것일까? "그당시 첨단 컴퓨터라 하면 병렬처리와 분산처리 두가지 기능이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톨러런트 기종에는 분산처리기능이 들어가 있었죠. 또 OLTP기능이 있었고요. 전자는 연구소측에 매력적이었고, 후자는 데이콤측에 매력적이라 결국 양쪽이 모두 OK한 것이었죠"
백인섭 소장의 주장이었다.
"당시에 선정 대상이 되었던 서너가지 기종중에서 어느 기종이 1등이냐 하는것은 판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거의 엇비슷했으니까요" 연구소 입장에서 기종선정작업에 참여했던 오길록 단장의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입기종이 톨러런트 제품으로 결정되자 사방에서 불평과 비난이 쏟아졌다. 주로 컴퓨터에 관한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비난의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유닉스(Uni.)라는 오픈시스템(Open System)을 채택한 데 대한 비난이었고, 또 하나는 톨러런트 제품 자체에 대한 비난이었다.
유닉스를 운용체계(OS)로 하는 컴퓨터는 그때까지 PC 수준에 머물러 있을뿐 비즈니스용으로는 정착되지 않았다. 행정전산망사업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전산화사업에는 IBM이나 데크, 후지쯔 제품의 대형 컴퓨터가 사용됐을 뿐 유닉스 기종은 채택된 일이 없었다. 다만 그 무렵에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뉴웨이브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닉스 기종도 비즈니스용으로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IBM이나 후지쯔 등 대형 컴퓨터에 익숙해 있는 국내의 전문가들에게 행정전산망사업에 유닉스 기종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만 보였고, 때문에 자신있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들의 비난의 목소리에는 기종 결정 과정에서전문가라 자처하는 자신들이 소외된데 대한 섭섭함도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용태 사장이 유닉스를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종의 예감이었다. 앞날의 컴퓨터의 발전 추세가 거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연구소와 대학이 압도적으로 유닉스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거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진출하여 지도자가 될 때는 유닉스가 천하통일을 하게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먼 장래를 볼 때 오픈시스템을 채택하는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누구도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의 컴퓨터 업계에 엄청난 변화가 왔다. 전세계적으로 오픈 시스템을 채택하지 않은 컴퓨터 회사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컴퓨터와 프라임이 문을 닫았고 데크도 어려움을 처했다. 반면에 맨처음 유닉스 시스템을 채택했던 휴렛패커드는 꾸준히 발전해 나갔다. 글러자 고유의 운용체계(OS)를 고집하던 IBM이나 데크도 유닉스로 방향전환을 했다. 이처럼 모두가 유닉스판으로 바뀌고 있었다.
또 하나의 비난은 톨러런트(Tolerant)라는 무명의 회사를 선정한데 대한 것이었다. 회사 자체도 차린 지 몇년이 안된 모험기업으로서 언제 망할지도 모르며 그 제품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즉, 톨러런트의 제품은 컴퓨터의 라이프 사이클로 보아 1세대 뒤질 뿐만 아니라 생산 가동의 경험이 적어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시행착오의 위험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었다. 톨러런트 회사의 제품을 도입하여 행정전산망사업에 쓰자마다 그 성능을 놓고 말썽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톨러런트라는 회사는 우리나라에 컴퓨터를 수출한 지 몇년 안돼 컴퓨터를 생산하는 하드웨어사업을 포기하고 회사의 이름을 바꿔가며 소프트웨어사업으로 전향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톨러런트회사에 속은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선정작업을 할 당시부터 그 회사가 망할 것을 뻔히 내다보고 있었다. 모험기업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망할 회사를 골랐던 이유는 뭘까? 선정작업의 주역이었던 백인섭의 말을 들어본다.
"모험기업은 99% 망합니다. 행정전산망사업에다 우리기업을 참여시킨 이유는 바로 모험기업이 망하기 전에 기술을 빨리 전수받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기술을 전수받고 나서 모험기업이 망하면 더욱 좋습니다. 로열티를 낼 필요도 없이 송두리째 우리기술이 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