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야생동물 보호구역

저예산 독립영화 「악어」로 주목을 받았던 김기덕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야생동물 보호구역」. 이 영화로 그는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하는데 한층 진일보한 듯 보인다. 그가 끈질기게 집착하는 소외된 인간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우울하며 때로 캄캄한 긴 터널의 바닥까지 떠밀려 내려간 듯 답답하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한국표」와는 다른 독특한 감성은 감독의 이력을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놀랍다.

한때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만이 남아있는 야비한 사기꾼 청해(조재현 분). 프랑스 외인부대 입대라는 꿈을 안고 북한에서 밀입국한 홍산(장동직분). 세상에 버려져 23년이라는 세월을 독기 하나로 버티며 핍쇼(Peep Show)장에서 옷을 벗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로라. 그리고 마약 밀매를하는 로라의 남자, 에밀(드니 라방 분)과 공원에서 바디 페인팅을 하며 관광객들의 동전을주워담는 아랍여자 꼬린느.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혹은 자유를 위해 스스로 사회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채파리의 뒷골목에서 방목되고 있는 인생들이다. 더러는 사랑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돈을 위해 사랑을 팔기도 하면서 이 야생동물들은 각자의 「보호구역」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자유와예술로 표방되는 파리도 결국 마지막 안전지대는 될 수 없다. 이들의 비극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보호구역」을 탈출하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청해는 푼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지만 홍산을 만나면서 그의 무술실력을 이용해 목돈을 벌 목적으로 마피아 조직에 가담하고, 꼬린느를 사랑하면서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친구를 배신한다. 홍산은 파리의 열차 안에서 만난 로라의 핍쇼를 보며 외로움을 달래지만 유리창에 가려진 채 마스터베이션을 하는그의 사랑은 바람에 나뒹구는 쓰레기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결국 청해와 홍산은 에밀의 살인에 가담한 대가로 로라의 총에 맞고 쓰러진다.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악어」에서 보여지는 집착이 다소 광적으로 표출되며 때로 가학적 변태성과 같은 섬뜩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러한 투박함이 이 영화의 정서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스타시스템에 의해 제작되는 대부분의 영화와 차별되는 신선함과 함께 「악어」 이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김기덕 감독과 다시 콤비를 이룬 조재현의 연기는 스크린에서 그 독특한 캐릭터의 생명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파리 올 로케와 「그랑블루」의 홀롱사브아 팀의 수중촬영, 「퐁네프의 연인들」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드니 라방의 출연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드니 라방을 기대한 팬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할 듯. 아쉽게도 벗고 있는 몇 장면을 제외하곤 그의 연기를 거의 볼 수 없다.

<엄용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