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층까지 오르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정지되지 않았다.
18이란 숫자가 꺼지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혜경은 열린 엘리베이터 문으로 여유있게 내려섰다. 그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로의 맨 끝.
1820호실이었다.
어떤 숫자를 누를 것인가.
혜경은 잠시 망설였다가는 빠르게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소리가 들려왔다. 선택된 소리, 디주리두 소리였다.
뿌아아아아- 천을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몸에 걸친 호주 원주민들이 불어대는 속빈 통나무 소리. 혜경은 소파에 핸드백을 던져 놓고 털썩,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환철. 오늘도 어쩔 수 없을 것인가.
혜경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환철을 불러 내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뿌아아아, 혼을 불러일으키는 소리가 혜경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을 것인가.
환철과 연결된 핫라인.
어제만 해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 핫라인을 오프라인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그러면 끝이었다. 끝. 더 이상 환철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혜경은 몸을 뒤척였다 히히힝. 말, 종마장의 수컷 말 한 마리가 히히힝 소리를 지르며 혜경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 뒤에서 승민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승민의 부모도 그 말 뒤에서 혜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경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 쪽으로 다가섰다. 퇴근하기 전 은행에서 볼 때보다 더 현실적으로 맨홀화재의 흔적이 바라다 보였다.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각 맨홀마다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뿌아아아-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지고, 혜경은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발신음. 발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벌써 고장이 수리되었나? 창연오피스텔의 전화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동은행 쪽의 전화와 소속 전화국이 달랐다. 맨홀화재로 인하여 시외전화나 국제전화, 타 전화국간의 통신망에는 장애가 발생했었지만 통신망의 우회절체를 통하여 이미 회복되었고, 일동은행을 비롯한 광화문쪽 일반전화만 계속 고장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떻든 좋았다.
혜경은 송수화기를 든 채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