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IT업체의 "약속의 땅" 테헤란로 25시(4)

엘리트가 몰려온다

 27일 낮 역삼역 부근 테헤란로변의 한 호텔 커피숍. 한낮이라 손님이 거의 없는 이 곳에 정장 차림의 남녀 한쌍이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맞선 보는 사람들인가」했더니 종업원이 『저 여자분은 헤드헌터』라고 귀띔한다. 그러고 보니 두 남녀는 수첩을 펼쳐놓고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다.

 이기대 드림서치 사장은 『요즘 하루 평균 10건 안팎의 구인 의뢰가 옵니다. 구직 의뢰는 50건을 넘고요. 하루 한두건 의뢰받기도 힘들었던 지난해 이맘때에 비하면 천지차이네요.』

 테헤란로를 따라 20여개의 헤드헌터사가 성업중일 정도로 이 곳에 고급인력들이 몰려들고 있다. 학력수준도 높고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초기 테헤란로에는 굴지의 기업을 박차고 나오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벤처창업가들이 많았다. 요즘에는 떼돈을 번 벤처기업이 많아지면서 신규 창업가보다 성공한 벤처기업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그렇지만 쓸만한 사람들은 적다. 기존 업체에 있는 사람들을 빼내와야 할 정도다.

 헤드헌터사들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국적회사에 근무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벤처기업을 선호합니다. 급여수준도 외국기업에 못지 않고 스톡옵션도 있으니까요.』(이기대 사장)

 벤처기업들이 헤드헌터까지 동원하면서 고급인력을 뽑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유치에 앞서 기업평가를 받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테헤란로에 있는 사람들의 출신은 다양하나 기업과 대학·연구소 출신이 많다.

 대기업과 외국IT업체 출신들은 IMF 이후 활발했던 구조조정 이후 부쩍 늘어났다. 『어차피 평생직장을 보장해주지 않는 대기업에 있느니 벤처기업에서 한번 도전해 보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금이 풍부한 벤처기업의 경우 급여수준이 웬만한 대기업보다 훨씬 높으며 코스닥 등록은 매력적이다.

 기업출신들은 얼마전까지 주로 과장급 이하의 실무자들이었으나 성공 벤처기업이 늘어나면서 임원급까지 들썩거리고 있다. 삼성물산 이사 출신의 이금룡 옥션 사장, 한국오라클 이사 출신의 조석일 코코넛 사장은 대표적인 대기업 임원 출신 벤처기업 사장이다.

 기업 출신 벤처기업인들은 대기업과의 가교 역할도 맡는다. 최근 벤처기업과 대기업간의 대규모 제휴와 인수·합병이 활발한 것이 기업 출신 벤처기업가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학과 연구소 출신도 테헤란로의 또다른 축이다. 주로 성공한 벤처기업들은 엔지니어출신들인데 이들은 출신 학교나 연구소의 후배들을 적극 끌어들인다. 테헤란로에서는 서울대와 KAIST 등 명문대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으나 테헤란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벤처투자가들이다. 주로 펀드매니저출신들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걸쳐 있는 이들은 돈줄을 쥐고 있으면서 테헤란로를 벤처거리로 만든 연출자들이다.

 도용환 STIC 사장, 이태용 인터베스트 사장, 홍종국 e캐피탈 사장, 이인규 무한기술투자 사장, 김태한 와이즈내일인베스트먼트 사장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테헤란로 일대에는 수많은 벤처 인맥이 있다. 학맥과 특정기업출신 인맥이 있는가 하면 창업을 같은 곳에서 했다는 인연에서 묶인 인맥도 있다.

 이 곳의 터줏대감격인 메디슨이 투자한 벤처기업들로 형성된 메디슨가가 있는가 하면 미래와사람·KTB 라인은 수많은 투자사를 거느려 최대 계파를 자랑한다.

 또 서울대 겸 한글과컴퓨터 인맥도 이 곳에 터를 잡았으며 송도 미디어밸리 출신 사장들로 형성된 미디어밸리파,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PICCA) 산하 벤처기업들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

 워낙 변화무쌍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곳의 인맥은 서로 얽히고 설켰다. 특정 인맥을 갖다붙이기 민망할 정도다. 어쨌든 테헤란로 사람들은 친한 사이끼리 응집력을 높여가면서 테헤란로를 이끄는 이너서클을 형성한다. 단순한 정보 교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사업까지도 구상한다.

 비판의 소리도 있다. 테헤란로에 있다가 얼마전 잠실로 사무실을 옮긴 벤처기업가 C씨는 『인맥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좋으나 배타적으로 흘러 인맥에 끼지 못하는 신흥 벤처기업가에게는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밤늦은 시각에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못마땅해 한 건물주의 요구로 테헤란로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헤란로에는 지식과 실력, 야망으로 뭉쳐진 파워 엘리트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다.

 로커스 김형순 사장과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듯 외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도 귀국, 테헤란로를 기웃거리고 있다.

 돈과 정보가 넘치는 테헤란로는 엘리트들에게 있어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끊임없이 고급인력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