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중에는 펀딩이나 공모 등을 통해 끌어모은 돈으로 재투자보다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벤처기업들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공모자금이나 증자금을 마련해 주력사업에 투자하거나 미래에 대비한 신규투자 대신 평가차익을 노린 출자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코스닥등록법인들이 유상증자 및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총 4조6785억원 중 1조5285억원을 타 법인 출자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 법인 출자 상위 20개사 중 15개사가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이다. 이는 벤처기업들이 지분출자에 열을 올렸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타 법인 출자규모가 555억원으로 코스닥등록법인 중 가장 많은 새롬기술은 창투사 성격을 띠고 있는 새롬벤처스 설립에 무려 167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수익모델 개발이나 핵심 사업은 뒷전인 채 지분출자를 통한 금융소득에만 관심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당연해 보일 정도다.
또 핸디소프트가 올들어 파트너스벤처캐피탈에 125억원을 출자한 것을 비롯해 에이스테크놀로지·한글과컴퓨터·골드뱅크 등도 창투사를 설립하거나 신규로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뱅크의 경우 지난해 선발 인터넷 벤처기업으로 언론과 증시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나 무분별한 출자와 지분매입을 통한 계열사 확대 등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대표적인 케이스. 김진호 전 사장은 쫓겨나다시피 사장직에서 물러났고 증권사들은 기업분석마저 포기해 소외주로 전락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례도 나타났다. 네트워크장비 유통업체인 테라의 박상훈 사장은 지난해 9월 언론과 회사 홈페이지 등에 「유로시장에서 500만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명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 27만주를 매도해 24억5000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기는 등 모두 27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17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밖에도 공모시 사용내역서에는 신규사업 및 기술개발 투자나 운영자금용으로 기재해놓고 시세차익을 노리고 타 법인에 투자하는 사례도 적지 않으며, 주가관리 차원을 넘어서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벤처기업도 눈에 띈다.
증시전문가들은 벤처기업들이 주 사업내용과 관련이 적은 금융 창투업에 무분별하게 진출,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벤처자본의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 자금의 용도를 관계 기관이나 정부가 나서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굿모닝증권 김동준 연구원은 『이같은 벤처업체들의 지주회사 전략은 솔루션 확보나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관련 업체에 출자함으로써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벤처기업들은 인터넷 붐에 편승해 사업내용보다는 단기 평가차익을 노리고 출자하는 경향이 커 결과적으로 벤처 특유의 핵심역량 약화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벤처비즈니스의 속성상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것도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 하며 기존의 강점(주력사업)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것이어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투자는 결국 한눈팔기식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벤처기업들이 되새겨야 할 때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