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넘어야할 산` 아직 많다>(3)반도체 정책 다시 짜자

 하이닉스의 유동성 위기는 국내 반도체산업이 이미 정상궤도에서 이탈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하이닉스 사태를 거울삼아 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다시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빅딜’을 성사시켰을 때 업계 한켠에선 국내 반도체산업 구조가 안정화될 것이라고 한가닥 기대를 걸었다. 하다못해 메모리 가격 결정권이라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이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반도체 빅딜’은 완전히 실패했다. 하이닉스는 생존을 놓고 싸우고 있다. 삼성전자도 국내 경쟁자를 잃은 탓인지 긴장감이 떨어져 예전만큼의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격 결정권은 커녕 불황이 심화될수록 국내 메모리업체들은 시스템업체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있다. 메모리에 이어 집중 육성하는 비메모리산업도 전반적인 불황과 기본적인 경쟁력 취약으로 좀처럼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견인차인 양산 경쟁력도 대만에 이어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른 중국으로 인해 갈수록 약화될 것이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등 선진 반도체업체들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아우르는 시스템온어칩(SoC), 차세대 메모리 등의 미래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승승장구해온 국내 반도체산업이 총체적인 난국에 휩싸인 것이다. 심지어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과 대만에서 큰 지진이라도 나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웃지못할 농담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산업이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알려진대로 디자인 설계와 장비 및 부품, 재료산업이 반도체산업의 뿌리다. 우리 산업은 이 분야에 너무 취약하다. 90년대부터 국산화 정책이 활발히 전개돼 왔으나 국내에는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장비 및 부품, 재료업체가 없다.

 세계 반도체산업의 요구에 대응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삼성과 하이닉스에 필요한 제품의 생산에만 집중해온 결과다. 국내 수요를 보고 애써 개발해도 그 사이 외국업체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 내놓아 쓸모없게 되는 제품도 많다.

 따라서 원가절감 등 소자업체의 입맛대로 짜여졌던 국산화 전략도 장비와 부품·재료업체 위주로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설계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가 이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발벗고 나섰으나 부처간 중복투자 및 산업 흐름과 동떨어진 기술개발 등으로 자칫 샛길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늘어났다고 반도체 설계산업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업체와 소자업체 등이 긴밀하게 연결돼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이 급선무다. 이점에서만 보면 오히려 중국 상하이에 밀집한 반도체 설계회사들이 국내업체보다 잠재력이 크다.

 김경수 산자부 반도체 전기과장은 “아직은 우위인 메모리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향상시키는 한편, 비메모리산업은 시스템·소자·설계업체가 모두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대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하이닉스를 하루빨리 회생시키는 것이나 더욱 시급한 일은 국내 반도체산업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