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보기술(IT)산업의 발달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업무차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기내에서 세계 어느 곳으로나 전화를 할 수 있고, 노트북PC로 업무를 보거나 갖가지 게임을 하며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웬만한 회사들은 전세계의 지사들과 온라인 영상회의시스템을 도입해 장거리 여행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IT는 특히 일상생활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PC기능이 있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나 냉장고가 출현해 주부가 부엌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애교 만점인 로봇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사이버시장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됨에 따라 고객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문화생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IT산업은 우리의 생활양식 자체를 크게 바꾸고 있다. 양적인 성장이 중요시되던 산업시대와는 달리 정보시대에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모든 산업의 경쟁이 가속되고 있다. 이제는 질적으로는 다소 떨어지지만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선택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에 따라 질적인 경쟁을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IT산업의 육성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IT가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디자인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IT란 본래 이성적이며 하드(hard)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감성적이고 소프트(soft)한 디자인 요소가 가미돼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들어 기술의 평준화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디자인이야말로 차별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IT기업의 비결은 바로 디자인을 통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은 예외없이 최고 수준의 IT와 디자인을 결합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경영에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지적자산인 IT와 디자인이 공생적 협력관계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과 디자인을 양대 축으로 해 창의성 있는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결단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아름다운 회사’라는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소비자들은 이미 ‘디자인이 3류면 기업도 3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선호하는 IT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경영을 해야 한다. 디자인 경영은 최고경영자가 디자인 마인드를 갖고 기업의 경영을 리드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애플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만년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 회장이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를 독려해 독창적인 디자인의 ‘아이맥’을 개발함으로써 일거에 상황을 반전시켰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흔히 ‘누드 컴퓨터’라고 불리는 이 제품 덕분에 애플이 흑자기업으로 전환됐던 것이다. 이는 곧 디자인 경영이 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디자인 경영을 하기 위해 최고경영자가 꼭 디자인 전문가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 우수한 디자이너들과 협력해 디자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회사의 로고·편지지 등과 같은 서식류, 상품의 디자인, 사옥의 형태, 직원들의 옷차림과 행동양식·광고 등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되 정체성(identity)이 형성되도록 해주려면 나름대로 전제조건과 방법론이 요구된다. 특히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경우 충분한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한팔 거리 정책(arm’s lengths policy)’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우리나라의 디자인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무역협회에서 우리 제품을 수입하는 유럽연합(EU)의 바이어들에 대한 조사결과 응답자의 69%가 우리나라의 디자인 수준이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견기업들이 미국·독일 등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디자인력이 총체적인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디자인 경영을 통해 IT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다시 한번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다.
<한국디자인진흥원장 ceo@kid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