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버25시>포항공대 대학원장 박찬모

만인이 공노할 잔혹한 테러 행위가 미국에서 자행되던 날 밤 11시쯤 나는 늘 하던 대로 집에서 e메일을 열람한 후 한 일간지 웹사이트를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CNN방송을 듣고서야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워싱턴 근교의 미 국방성 건물도 비행기 테러를 당했다는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몹시 걱정됐다. 그러나 국제전화는 회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e메일을 통해 그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안심할 수 있었다. 인터넷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은 내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밤새 들어온 수십 통의 e메일을 점검하고 집에서 하던 작업을 사무실에서 계속하기 위해 파일을 만들어 사무실 PC로 보내 놓고는 출근을 한다. 그리고는 강의·회의·식사 시간을 빼고는 거의 PC 앞에 앉아 인터넷을 항해한다. 귀가해서도 마찬가지다. 포항공대 교수아파트는 네트워크 시설이 잘 돼 있기 때문에 학교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다를 바가 없다. 취침 전에 마지막으로 e메일을 다시 한 번 열어보고 필요한 웹사이트를 몇 군데 방문하는 것이 내 일과의 끝이 된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된 60년에는 컴퓨터가 지금처럼 발달해 네트워크로 연결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맨 처음 사용한 컴퓨터는 미 해군 병기연구소의 IBM 704로 제1세대 컴퓨터였는데 컴퓨터실 밖에서는 볼 수 있었지만 컴퓨터 옆에는 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61년 IBM 1620이 내가 다니던 대학에 설치되면서 나는 거의 매일 밤을 컴퓨터실에서 지냈다. 그때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방사능 관련 과제를 이 컴퓨터를 사용해 풀었는데 인도학생이 탁상계산기로 1년 넘게 걸려서 푼 문제를 2시간 반 만에 풀어내고는 그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PC로는 2분도 안 걸린다.

 그후 나는 컴퓨터와 함께 살아왔다. 컴퓨터 발달의 산증인이 됐으며 컴퓨터가 네트워크와 결혼하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군 관계 연구만을 위해 만든 알파네트가 일반대학에까지 확산되고, 그후 기업들도 포함됐으며 드디어는 전세계를 엮는 인터넷이 되는 것을 봐왔다. 반면 네티즌이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범죄 행위가 자행되고 점점 증가하는 가슴아픈 현실도 봤다.

 모든 과학기술에 양면성이 있듯 인터넷에도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언론매체를 통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한 횡령이나 사회악이 되는 사이트 개설 등 윤리·도덕성에 어긋나거나 범죄 행위가 되는 여러 가지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컴퓨터와 인터넷의 역기능은 많다.

 나는 90년 포항공대에 부임해서부터 매년 ‘컴퓨터와 사회’ 과목을 가르치며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들이나 사용자들의 윤리·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이나 법적 제도만으로 역기능을 뿌리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보사회 구성요원 하나 하나가 ‘정신혁명’을 해야만 올바른 정보사회가 정착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활용하면서 답답하고 곤혹스러웠던 경험을 하나 들고 글을 마치려 한다. 나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가상현실 같은 전문분야 연구 외에도 북한의 정보기술에 대한 연구를 10여년 전부터 해왔으며 자료를 찾기 위해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일본 등에 설치된 북한 관련 웹사이트가 있어 많은 도움이 됐는데 97년 봄에 갑자기 그 사이트들에 접속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97년 여름부터 1년간 일본에 가 있었기 때문에 연구를 계속 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금은 모두 풀려 연구에 아무 지장이 없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parkcm@postech.ac.kr

 

 <서현진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