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뛰고 있다. 수탁생산(파운드리)사업으로 닦은 반도체산업 기반을 D램과 시스템온칩(SoC) 등으로 확대하며 일본과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 최강의 반도체 국가를 꿈꾸고 있다. 현재 대만은 외견상 세계 반도체업계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기업이 단 한곳도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텔·도시바에 이어 삼성전자가 당당히 3위에 랭크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 대만이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는 이유는 뭘까? 대만 반도체산업의 현주소와 국내업계의 대응방안을 3회에 걸쳐 조망한다. 편집자
최근 국내 반도체업계에 대만 경계령이 내렸다. 한국이 IMF로 맥을 못추는 동안 공격적인 투자로 지난 2000년부터 반도체 일관생산공정(FAB:팹) 생산능력 부문에서 한국을 따라잡더니 이제는 총 생산액 부문에서도 1위를 넘보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웨이퍼 기준으로 지난 99년 3억8300만제곱인치로 한국과 엇비슷했으나 2000년에는 5억8400만제곱인치로 4억3200만제곱인치 수준인 한국을 완전히 따돌리기 시작했다.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액은 이미 98년부터 한국을 추월했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나라의 투자규모는 대만의 64% 수준에 그치고 있다.
총 생산액(매출액) 면에서도 97년 한국과 대만의 생산액은 각각 103억달러와 54억달러로 50억달러 이상의 격차를 보였으나 그 차이가 99년 39억달러, 2000년 35억달러로 계속 줄어들다가 지난해 10억달러까지로 좁혀진 상태다. 더욱이 대만이 투자를 집중했던 2000년에 착공한 300㎜ 신규 팹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면서 총 생산액도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이면 역전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만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D램 현물시장을 바탕으로 반도체시장에서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만 D램 ‘현물가(spot price)’는 세계 반도체 가격 추이에 영향을 줌으로써 삼성·하이닉스 등 국내업체의 실적전망으로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TSMC·UMC의 가동률은 전세계 반도체시장의 ‘바로미터’로 평가받을 정도다.
대만은 또 막강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가트너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대만은 지난해 약 100억달러(한국은 90억달러)의 시장규모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110억달러) 다음 큰 시장이다. 중국에 비해 인구가 2%도 채 되지 않는 대만이 이처럼 큰 시장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전세계 반도체업계가 대만업체들을 바탕으로 각종 정보기술(IT)기기와 반도체를 제조, 유통하기 때문이다.
TSMC·UMC의 경우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무려 1000여개에 달하는 해외 고객들을 주주 등으로 확보하면서 연간 80만장(200㎜ 웨이퍼 기준) 이상의 웨이퍼를 가공하는 거대한 반도체 제조업체로 자리잡았다. 내년이면 대만은 세계에서 300㎜ 전용 공장을 가장 많이 가진 국가가 된다.
반도체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설계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은 것도 대만의 자랑거리다. 대표적인 팹리스(FABless)업체 비아와 SiS가 생산하는 PC칩세트는 전세계 공급량의 70%가 넘으며 200여개 팹리스업체들이 제2의 실리콘밸리를 형성하고 있다. 대만산업기술연구소(ITRI)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팹리스업체들의 매출은 34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2번째다. 비아는 지난해 10억달러의 매출로 전세계 팹리스업체 순위 4위를 차지했고 DVD플레이어용 칩으로 급부상중인 미디어텍은 여타 팹리스업체들이 시장급락과 함께 20∼30%씩 매출이 급감하는 중에도 10%가 넘는 성장세로 4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거둬 8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대만은 통신칩업체 리얼텍, 디지털 컨슈머칩업체 선플러스, 디스플레이용 칩업체 노바텍 등 튼튼한 신생업체들이 2억∼4억달러의 매출을 거두며 시스템온칩(SoC) 등 반도체설계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만이 무서운 것은 중국과의 유대 강화다. 이미 파운드리업체 TSMC와 UMC는 대만 정부의 허가를 얻어 200㎜ 최신 공장을 중국 상하이 등지에 2∼4개 정도 짓기로 하고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패키징·테스트업체 ASE도 이미 중국에 공장을 설립중이다. 중국 반도체산업의 급부상을 막을 수 없다면 거대한 연대로 공생하자는 전략아래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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