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의 피플 인수 공세` 업계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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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냐 기회냐.’

 지난 8일 처음 터져나온 오라클의 피플소프트 적대적 인수합병(M&A) 공세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와 이해관계가 있는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수가격으로 당초 주당 16달러를 제시한 오라클은 피플소프트의 ‘그 정도는 어림없다’는 반응에 서둘러 주당 19달러50센트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피플소프트 주주들은 “주당 20달러 이상은 돼야 한다”며 오라클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 와중에 IBM·마이크로소프트(MS)·SAP·시벨 등 두 회사의 경쟁사는 이번 사태가 자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철한 주판알’을 튕기며 이 기회를 ‘호기’로 만들기 위해 호흡조절을 하고 있다.

 일부 피플소프트 고객들은 제품 구매를 연기하거나 자제하고 있고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인 SAP는 경쟁사의 혼란을 틈타 ‘고객 뺏어오기’에 나섰다. 오라클-피플소프트간 M&A사건은 이미 세계 소프트웨어시장의 역학구도를 바꿀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피플소프트 사냥에 나선 오라클이 MS에 이어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업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된 것은 순전히 데이터베이스(DB)라는 ‘막강한 특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라클은 지난 2001년 인포믹스를 인수한 IBM에 1위를 내준 쓰라린 시련 이후 절치부심, 작년에 39.4% 비중으로 정상을 탈환했다. 그러나 오라클은 DB 매출이 이전처럼 신통치 않은 데다 등 뒤에 바싹 다가온 MS의 추격으로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신성장동력에 목말라하던 오라클이 기업용 SW를 확보하기 위해 피플소프트 인수에 나선 이유다. 당연히 MS와 IBM의 심기는 불편하다.

 한 애널리스트는 “현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의 화두는 통합과 패키지인데 만일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게 되면 DB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제공, 오라클의 위세가 이전보다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관계관리(CRM)·전사적자원관리(ERP)·공급망관리(SCM)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시장으로 넘어오면 오라클이 왜 피플소프트 합병에 나섰는지 명확해진다.

 MS와 SAP를 최대 소프트웨어기업으로 부상시키려 하는 오라클은 신규 고객을 기준으로 할 때 작년 CRM시장에서 피플소프트와 같은 4.3% 비중에 그쳤다. 이 성적표가 얼마나 초라한지는 시장 1위와 2위인 시벨(24.9%)과 SAP(15.9%)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MS가 윈도를 기반으로 기업용 소프트웨어시장에서 입지를 넓힌 것처럼 오라클은 DB를 바탕으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오라클과 피플소프트의 합병이 제대로 시너지효과를 내면 기업용 소프트웨어시장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RP시장에서도 SAP는 오라클과 피플소프트를 합한 실적보다 한참 앞서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작년 ERP시장에서 SAP는 25.1%로 1위, 오라클과 피플소프트는 각각 7.0%와 6.5%로 2, 3위를 차지했다. 오라클과 피플소프트를 합쳐도 비중이 13.5%로 여전히 SAP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SAP·MS·IBM 등 대형 소프트웨어업체는 아직 “오라클-피플소프트 합병이 이뤄져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내심 긴장하며 합병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