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한국업체에 DTV OEM 공급 제의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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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왕국 미국의 PC업체들이 잇따라 자사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디지털가전제품을 소개하는 ‘중재자’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게이트웨이의 디지털TV시장 진출이 가전업계에 ‘미풍’이었다면 델의 시장 진입은 메가톤급 ‘태풍’에 비교될 정도다. 특히 미국 IT업체들의 디지털TV시장 진출은 이 제품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간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국내 가전업체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왜 진입하나=3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PC 시장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디지털TV였던 것이다.

 소니, 마쓰시타,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했던 아날로그TV 시장과 달리 LCD TV 등 디지털TV는 대부분 모니터 업체들이 제품개발을 성공할 정도로 표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 기술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제품 마진도 PC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게이트웨이가 지난해 말 PDP TV를 론칭하자마자 두자릿수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도 델과 애플을 자극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델은 미국 홈PC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소비자가 주문하면 그때부터 제품을 만들기 시작, 재고를 최소화하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낮은 가격에 PC를 팔면서도 높은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델이 TV시장에 뛰어들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대대적인 가격인하다. 델의 사업구조상 TV업체들보다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만약 베스트바이, 서킷시티 등 유통업체들이 델에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들도 가격을 내린다면 이 부담은 고스란히 TV업체로 전가될 것이 뻔하다.

 국내 TV업체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가전침체에도 디지털TV만큼은 높은 성장률과 마진을 안겨준 효자”라며 “델의 시장참여가 본격화되면 TV업체에는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의 김성한 선임 연구원은 “PC와 달리 아직까지 디지털TV는 개인화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시장 성공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TV용 LCD패널이나 PDP 수급이 원활치 않다는 점에서 물량공세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차세대 LCD라인이 가동되는 2005년께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로에 선 국내 TV업체=델의 TV사업 성사를 결정짓는 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 TV업체들이 쥐고 있다. 델은 모니터의 경우 대만업체들의 아웃소싱 비중을 크게 늘려가고 있지만 TV제품의 경우 성공적인 론칭을 위해 기술력이 높은 국내업체들에 제품 소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LG필립스LCD 등 세계적인 LCD TV용 패널 공급을 국내업체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도 델이 한국을 선호하는 요인이다. 실제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주 타깃이며 일부 중견업체들도 델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델의 오퍼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중이다. 델에 OEM으로 TV를 공급하자니 자사의 브랜드 TV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자칫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격’이 될 우려도 있다.

 삼성보다는 LG전자가 델의 오퍼에 더 긍정적인 모습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내업체가 OEM공급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대만이나 중국업체들이 물량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지만 선택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