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혁명이 몰고온 미디어 융합현상(convergence of media)은 네트워크의 융합, 단말기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사업자간 융합, 규제방식(또는 기관)의 융합 등 미디어 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공정경쟁의 운영원리를 앞세워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주도하고 있고, 유럽과 일본은 신문과 공영방송의 존속·발전을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는 뉴미디어의 도입과 디지털화의 수용, 미디어 다각경영 등과 관련, 공정경쟁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기존 미디어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공적 기능을 보다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공영방송 또는 지상파 방송의 존속 및 발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경쟁원리의 도입과 민간기업 및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의 방송정책이란 신규 방송서비스 진입을 통한 기존 방송사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물론 민간사업자의 경우는 소유권 규제완화를 통해 소유권 지분확대와 함께 신규 방송서비스의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영방송사에 대한 배려,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출, 민간사업자의 소유권 확대와 겸영허용 등은 실제 사업자 구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상호 충돌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규제기관이 이들간 방송시장에서의 시장지배력을 고려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선진제국도 공영방송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인사권이나 재원 통제에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는 공영방송을 직접적인 정치통제의 도구로 이용했다. 영국·일본 등 각국의 공영방송은 각계 각층의 대표성을 갖는 위원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를 설립, 운영상의 감독권을 부여하거나 사장 선출의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영방송 사장의 임명 과정이나 선진국 사례를 보면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집권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방송규제기관인 방송위원의 구성도 전문성과 사회적 대표성을 고려한 위원 인선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강한 위원들로 구성되는 것은 방송위원회-KBS이사 선임-KBS사장 선임으로 연결되는 임명절차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은 자기 세력의 컬러에 맞는 사장을 선임하기 위해 방송위원 수나 KBS 이사 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이들 위원과 이사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던 KBS2의 민영화의 논리는 한국 방송구조개편, 또는 공영방송의 위상 정립이라는 차원의 논의 보다는 방송외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민영화의 절차와 방법, 민영화 이후 방송의 공공성 보장방법, 한국 방송질서의 변화 등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이나 논리가 없고 다분히 감정적 발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KBS2가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공영방송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경영효율화와 합리화가 전제돼야 한다.
지상파DMB가 아직 수익모델로 검증되지 않았으나 이동중 수신이 가능해 채산성이 높을 것이라는 점에서 신규사업으로 매력이 있다. 그런만큼 위험분산 차원에서 KBS 주도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되 자본력이 충분한 민간사업자나 통신사업자· 자동차 메이커와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TV전자상거래·홈네트워킹 사업 역시 제휴를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와함께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출이 이뤄지면 방송사업자도 통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시 가용 주파수를 활용해 통신서비스나 방송과 통신의 경계 지역에 놓여 있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기술적, 사업적 측면에서 적극 검토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디어 업체들간 전략적 제휴나 M&A를 통해 미디어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 미디어 시장의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야심이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방송사 역시 글로벌 시대의 무한경쟁을 대비해 각 부문 주력사업자간 기능·자금·인력을 상호 활용하는 전략적 제휴와 연대가 필요하다.
◆정윤식 강원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ysjung@cc.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