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렉션]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41)가브리엘 나이트

80년대 게임을 즐기며 자라난 유저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오락실을 전전하며 오락실 게임에 불타올랐던 유저가 한 축, 그리고 MSX 일본산 컴퓨터나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등 비디오 게임을 주로 즐겨온 유저들이 다른 한 축, 마지막으로 애플 컴퓨터와 IBM PC로 이어지는 PC 게임을 주로 즐겨온 유저 등 세 부류다.

이 세 가지 축을 모두 섭렵한 욕심 많은 유저들도 상당수 있지만, 위와 같은 성향의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의 부류에 속하는 게임들이 조금씩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지금부터 거론할 어드벤처 장르는 마지막 부류, 즉 PC로 게임을 즐기던 PC 유저들에게 특화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미국식 어드벤처’로 인식되고 있는 이 장르는 영화나 소설 속에 유저가 실제로 뛰어든 느낌. 즉, 잘 짜여진 스토리 속을 유영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장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드벤처 장르에서 인기를 모았던 작품에는 루카스 아츠의 ‘인디아나 존스’, ‘원숭이 섬의 비밀’이나 시에라 온라인의 ‘킹스 퀘스트’ 시리즈, ‘래리’ 시리즈,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 등이 있었다.이 중에서 ‘가브리엘 나이트’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이 작품의 1탄이 발매된 1993년은 어드벤처 게임의 전성기였다. 수 많은 양질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기존의 어드벤처 타이틀들과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 때문이었다.

바로 ‘성인 취향’이라는 것. 그 시대의 게임들이 ‘소년 소녀들이여, 꿈을 가져라!’라고 외치는 듯한 명작동화 풍의 스토리를 주로 보여줬지만 ‘가브리엘 나이트: 선대들의 죄(이하 가브리엘1)’는 부두교에 얽힌 기묘한 살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삭막하고 딱딱한 추리소설의 느낌을 줬다. 또 플로피 디스크 11장에 달하는 파격적인 대용량을 이용해 사실적인 그래픽을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음울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 게임음악 역시 동시대의 작품들과 확연히 달랐다.

이런 외적인 요소 외에도 게임을 풀어나가는 플레이 방향이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은 유저가 작품에서 주어지는 퍼즐을 해결하기 위해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야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엉뚱함에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가브리엘1’은 실제 탐정처럼 상대와 끝없이 대화를 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허점을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었다. 본격적인 성인 취향의 추리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가브리엘1’의 성공은 2편을 제작하도록 만들었는데 CD 롬이 등장하자 제작사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FMV(Full Motion Video)라는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영화같은 게임이었다.

게임 내용을 모두 영화처럼 촬영해 그 속에서 유저가 모험을 즐기는, 일종의 인터랙티브 무비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FMV는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제작비가 너무나 높아 개발사의 부담이 매우 컸다.

2시간 남짓한 영화에 드는 제작비도 만만치 않은데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영화보다 훨씬 길다. 또 인터랙티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을 모두 표현해야만 한다. 따라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촬영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상당수의 FMV들은 형편없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 등으로 유저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러나 ‘가브리엘 나이트: 야수의 내면에서(이하 가브리엘2)’가 발매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FMV를 사용한 그 어떤 게임보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동영상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했던 점은 신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가브리엘 나이트’가 지니고 있었던 고유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살려낸 부분이다.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가브리엘2’는 뛰어난 스토리와 흥미진진한 퍼즐 요소로 성공을 거뒀지만 FMV에 부담을 느낀 제작사 시에라는 FMV 게임 개발을 중단하고 말았다.2편의 성공 이후 3년의 시간이 흘러 후속작 ‘가브리엘 나이트: 신성한 피, 저주받은 피(이하 가브리엘3)’가 발매됐을 때 해외의 한 유명 게임매체는 “‘가브리엘3’는 어드벤처 장르가 여전히 조금의 생명력은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가브리엘3’가 발매된 1999년은 정통 어드벤처 게임들의 게임성이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에 유저와 언론에서 더욱 많은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장르의 전반적인 쇠퇴 속에서도 성공한 이유는 시대의 추세에 따라 그래픽이 풀 3D로 변했을 뿐 작품 자체는 ‘가브리엘 나이트’의 혈통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흡혈귀에 초점을 맞춘 ‘가브리엘3’의 스토리 또한 매우 탁월했다.

‘가브리엘 나이트’가 이 정도의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게임의 메인 디자이너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인 젠슨의 공이 크다. 역사, 오컬트, 철학, 종교 등을 섭렵한 그녀는 일찌감치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보여왔다.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에도 명작 어드벤처 게임으로 손꼽히는 ‘킹스 퀘스트 Ⅵ’의 디자이너이자 디렉터로 능력을 인정 받았다. 그녀의 심오한 스토리 라인은 ‘가브리엘 나이트’를 어드벤처 장르의 최고봉에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 작품의 수 많은 팬들은 제작이 불분명한 ‘가브리엘 나이트 4’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드벤처 장르의 몰락에 의해 그녀가 다시 이 시리즈를 개발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 그녀는 소설가로 활동하며 ‘밀레니엄 라이징(Millennium Rising)’과 ‘단테의 방정식(Dante`s Equation)’이라는 소설을 집필했으며 오베론 미디아라는 게임 개발사를 설립해 모든 사람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 제작에 힘쓰고 있다.어드벤처 게임의 몰락에 대해 게임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게임의 특성상 홀로 퍼즐을 풀어나가는, 사전에 정해진 통조림같은 반응만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어드벤처 장르는 현재와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서 각광받는 게임, 즉 임의성을 강조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사람이 참여해 하나의 퍼즐만을 풀도록 게임을 디자인할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멀티플레이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해 주는 방법, 도구, 테크닉 등은 아직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 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그런 방법과 도구, 테크닉 등을 제인 젠슨이 멋지게 해결해 주길 바라며, 위의 결론을 내린 게임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스토리’를 네트워크로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토리의 매력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가브리엘 나이트’의 후속작이 등장해 다시 한 번 어드벤처 게임의 부흥을 이끌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이중문 피씨비 콘텐츠팀장 dio@gamer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