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걸작 시리즈](3)`화이트데이: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와레즈 때문에 망한 PC 패키지게임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와레즈를 얘기하면서 2001년 9월 출시된 손노리의 공포게임 ‘화이트데이:학교라는 이름이 미궁’을 빼놓을 수 없다.

손노리가 자체 개발한 ‘왕리얼엔진’을 이용해 3년에 걸쳐 만든 ‘화이트데이’는 오랜 제작기간에 어울리게 게임성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게임 전문가나 게이머들의 공통된 견해다.

‘화이트데이’의 제작사인 손노리는 장르에서부터 호러를 택해 기존의 국산 게임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더구나 손노리는 당시 ‘바이오 하자드’ 등과 같은 주류 호러게임들조차 다소 식상한 연출에 매달리던 상황에서 공언한대로 동양적 공포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당시 호러게임들이 공포를 유발하는 것은 갑자기 무엇인가가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화이트데이’에서는 주인공을 쫓는 악역이 좀비나 몬스터와 같이 실제로는 접할 수 없는 가상의 괴물이 아니라 게이머들의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학교의 수위다. 게이머들이 화이트데이를 플레이하려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걸어야 하고 불빛이 새어나갈까봐 손전등을 사용하는 것 조차 겁이 난다. 수위가 쫓아오면 대항할 방법이 없고 무조건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같은 장치들은 괴물을 만나면 때려잡으면 그만인 기존의 흔한 공포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재미를 가져다 준다.

사운도도 빼어나다.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발걸음, ‘끼익’하면서 문여는 소리, 기묘한 여자웃음소리 등은 게이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게다가 게임 오프닝과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간문화제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연주 ‘미궁’은 게임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밖에 마우스 하나만으로도 모든 조작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인터페이스, 보기 편한 메뉴 구성과 깔끔한 폰트 등은 게임을 더욱 돋보이도록 한다.

하지만 ‘화이트데이’의 판매량은 당시 유행하던 와레즈 때문에 예상외로 저조했다. 혼심의 힘을 기울여 역작을 내놓았던 손노리의 이원술 사장은 경악할 수밖에 없고 그는 이런 심정을 담아 인터넷에 와레즈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손노리는 와레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멀티플레이 기능을 도입하는 등 묘수를 모색했지만 이 사장의 글에 격분한 네티즌들은 ‘화이트데이’를 외면해 버렸고 결국 그것으로 끝이었다.

<황도연기자 황도연기자@전자신문>